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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속도로 예정「코스」170km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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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백산맥이 뚫린다.1천년이 넘게 쌓인 영·호남의 장벽이 헐린다. 대구변 광주간 1백70여km의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남부지방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하면 지도를 그리며 저마다 고속도로를 뚫는다.
『지역감점해소』『백제·신라문화권의 교류』 『관광·유적지 개발』『특산물품의 번창』 등 각자 주장을 곁들이기도 한다.
아직「코스」가 확정되지 않아도 시의 부동산 투기꾼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인접주민들은 『화합의 고속도로』에 발전할 고향을 그리며 가슴 부푼다. 건설 후보지를 따라 현장을 둘러본다.

<정확한 코스에 궁금증>
○…대구에서 국도로 1시간거리인 고령. 도자기 만드는 고령토로 유명한 가야문화의 중심지다.
읍내 지산동에 발굴이 채 안된1백7O기의 가야고분이 숨쉬고있다. 국내 유일로 가장 오래된 『알터암화』 (암화)와 고대의 사부·기산 도요지 등 문화의 보고가 교통 등 입지조건이 나빠 방치돼있다.
주민들 최대의 관심은 신설될 도로가 합천읍과 고령읍 중 어느쭉에 가깝게 지나 거창으로 가느냐 하는 것.
읍민 정성기씨 (50·농업) 는 군내벽지를 통과해 농지의 점유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협천은 군 소재지로 도내에서 유일하게 포장 안된 곳. 그래도 주민들은 이미「댐」이 계획되어있고 고속도로가 나면 국립공원 가야산이 각광을 받는다며 느긋한 표정들이다. 대장경으로 유명한 해인사가 있는 이곳은 현재 평일1천명, 휴일 4천명의 관광객이 찾지만 고속도로만 나면 3배는 늘 것이라고 사찰측은 전망한다.

<농지의 손실 적였으면>
○…뭐니뭐니해도 고속도로가 뚫리면 가장 혜택이 큰 곳이 경남의 가장 오지인 거창과 함양.
거창은 경남북부의 교육도시. 최근 신품종으로 개량된 사과는 맛이나 질, 양에서 대구를 훨씬 앞질렀다고 자랑한다. 이수원씨(48·과수원주인) 는 『대구사과는 옛말』이라며 고속도로가 뚫리면 거창사과가 호남은 물론 전국을 누벼 교과서를 바꿔야할 것이라고 열을 올렸다.
○…고속도로의 중심부에 위치하게될 함양은 벽지로 발전이 안됐지만 지리산관광객유치와 토종꿀·흑산양·곶감 등 특산물 장려에 여념이 없다.
백전면의 이성희씨(48)는 고산에서의 산양불고기와 진짜 토종꿀의 맛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을 것이라고 들떠 있었다.
함양의 또 하나의 자랑은 진상품이던 곶감. 길쭉한 감의 생김새가 술잔을 닮아 준시(회포)라고 불리는 이곳 곶감은 씨가 없는 지곡면개평 부락 것이 으뜸. 마천면일대 야산의 야생 감은 산 전체를 온통 붉게 물들여놓았다.
뜰에 앉아 오른손에 쥔 칼을 고정시킨 채 왼손에 쥔 감을 빙그르 돌려 껍질을 깎아 곶감을 만드는 처녀의 날쌘 솜씨에 또 한번 놀라고.

<천왕봉까지 3시간>
○…고속도로를 계기로 벌써부터 함양과 남원 등 지리산 인접군의 관광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지리산은 전남·북과 경남의 3개 도와 함양·남원·구리·하동·산청 등 5개 군의 접경에 위치한남도 최대의 명산.
군 당국은 함양까지의 교통만 좋아지면 백무동에서 정상인 천왕봉(1천9백15m)까지3시간「코스」로 당일등산도 가능하다고 내세워 남원·구례 쪽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남원은 광한루, 구비는 화엄사 등 명소와 절경의「코스」를 내세워 이에 맞서고 있다.
○…영·호남의 경계는 함양군상중림 부락과 남원군동면인월 부락사이의 해발6백여m 팔령고개. 아직도 산마루를 타고 임난 때의 성곽이 남아 도 경계를 이룬다고 고개 마루 위의 상중림부락 임윤길씨(64)는 장보기를 인월에서 매번 한다며 『지역감정이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다. 평생을 이곳에서만 살아온 그는 푹 팬 주름살 속에 전라도사투리와 경상도사투리가 잘 섞여 자연스럽게 만들렸다.

<서로 다투어 고장자랑>
○…고속도로의 서쪽 끝은 담갈. 광주∼담양간 9km는 남해고속도로에 이어져 이미 완공되어 있다.
전국최대의 죽물(죽물)산지인 담양이 고속도로에 거는 기대는 크다. 연간3백56만점 23억 원어치의 죽세공품을 만들어 2일과 7일 특유의 죽물시장이 서고있으나 최근「플래스틱」에 밀려 사양화추세에 있었던 것.
인간문화재 31호인 낙죽장 이동련씨 (74) 는 최근에는 후진양성에 힘쓰고 직접 작품을 만들지 않았지만 『영남지방에 내 작품이 진출하게 되면 또다시 인두를 잡아보고 싶다』고 껄껄 웃는다.

<전라·경상도 혼례 늘 듯>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광주∼대구간은 2시간대로 좁혀진다. 또 대전남쪽지방은 경부·호남·남해·구미고속도로를 합쳐 완전한 일일생활권이 형성된다. 내륙산간지방의 특산물과 동 서해의 수산물 유통구조가 개선되는 등 경제적 효과도 함께 한다.
경주에서 가야·지리·덕유산 등 3개 국립공원을 거쳐 무등산·내장산의 풍치가 1일 관광권으로 묶여 관광·산업·군사도로의 효과를 꾀할 수 있다.
문석남 교수 (전남대사회학과)는 그동안 인간적인 교류와 이해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장애를 받아왔다고 지적하고 도로가 개통되면 경제·문화의 교류와 함께 호남지방 처녀와 영남의 총각, 영남처녀와 호남총각이 결혼할 수 있는 길도 더 넓어져 인간교류가 활발해질 뿐 아니라 지역 간의 소득 불균형 등 불편한 관계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이 도로는 지금까지의 영·호남간의 우회적 접근을 벗어나 직선적 접근으로 서로의 위화감을 이해와 단합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건설과정에서 관광자원이나 자연보호 등 국토보전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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