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주권적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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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헌법 안의 채택여부를 판가름 짓는 국민투표가 오는 22일 실시된다. 과거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국민투표는 이미 우리국민들에게도 생소한 행사는 아니다. 다만 국민투표라는 행사에 이르기까지 과거 흔히 큰 혼란이나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국민에게 있어 국민투표의 인상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지난날 국민투표도 예외 없이 헌법개정안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중 상당수 개정안은「개정」이 아니라 특정인의 집권연장을 위한「개악」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국민투표에 대한 회고는 으레 환정사의 비난과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모든 국민투표는 그 내용의「개정」「개악」과는 상관없이 모두 다수 지지로 통과시킨 데 있어서는 예외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국민투표 역시 이런 전례에 따라 봐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새 헌법 안을 채택하여 제5공화국의 새 시대를 여느냐, 아니면 현행 유신헌법을 존속시키느냐를 판가름하는 이번 국민투표의 성격에서부터 우선 과거의 국민투표와는 다르다.
현행헌법 대신 새로운 민주적인 헌법을 갖자는 것은 「10·26사태」직후에 이미 조성된 국민적 합의였고, 과도기는 짧을수록 좋다는 국민적 합의도 새 헌법을 하루라도 빨리 채택하여 역시 새 시대 새 질서를 빨리 열자는 국민적 열망의 반영이었다.
게다가 새 법안은 제안 음의 집권연장을 위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례와는 결정적 차이를 보이고있다.
현행 국민투자법은 새 헌법 안의 내용에 관해 단순한 의견개진 외의 찬반운동을 금지하고 있고 더구나 언론을 통한 찬반의사표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내용에 관해 왈가왈부할 입장에 있지는 못하다.
다만 이번 국민투표가 지니는 역사적 성격을 음미하고 이에 따른 우리의 자세에 언급코자할 따름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번 국민투표는 제5공화국이냐, 유신의 존속이냐의 판가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새 헌법 안의 채택은 유신시대의 공식적인 종언을 뜻하는 것이다. 유신은 작년「10·26사태」로 실질적으로는 이미 종료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법적·제도적으로는 여전히 유예하며 이를 대체할 새 헌법 안의 채택·확정으로써야 공식적으로 종료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국민투표는 단순히 새 헌법 안을 채택한다는 의미를 넘어 약2O년에 걸쳤던 묵은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출발시킨다는 역사적인 함축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아울러 20년 동안에 있었던 온갖 불쾌한 추억들-장기집권·부정부패·가치관의 전도·국제적 수모 등을 청산하고 민주·면치·정의의 새 시대 새 사회를 회기 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따라서 국민투표는 단순히 정부적·정권적 차원의 행사가 아니라 국민전체의 주권적 결단이며 다짐인 것이다. 새 시대를 연다고 할 때 그것은 다만 새 정권을 탄생시킨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기약하고 있는 새시대의 논리가 규범적으로 집약·승화된 것이 새 헌법 안이다. 이 새 헌법 안에 대한「한 표의 의사」표시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새 시대를 기약하는 다짐일 것이다.
이제 국민투표를 1주일 앞두고 사회각계각층에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소이도 실은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한 표의 행사는 권리행사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전국 2천32만5천명의 유권자는 22일 모두 투표소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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