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찾은 환자 헛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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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초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金모(82.전북 남원시 도통동)씨는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반신불수가 됐다.

발병 직후 남원의료원으로 옮겨졌지만 신경과 전문의가 없어 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기느라 한시간 가량 허비해 초기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金씨 가족들은 "처음 도착한 병원에 전문의가 없어 여생을 불구로 지내게 됐다"고 한탄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국의 공공의료원들이 의사 부족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특정 과목의 진료를 포기하는 병원도 드물지 않다.

민간 병원에 비해 훨씬 낮은 보수 등으로 지원자가 적은 데다 기존의 의사들마저 의약분업이 시행된 뒤 개업을 위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들 공공의료원의 진료비는 일반 병원과 비슷하지만 지자체가 식비와 병실료 등을 낮게 책정해 통상 전체 진료비는 일반 병원의 80% 정도여서 서민들이 주로 찾고 있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백29곳의 공공의료원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는 5천7명(공중보건의 3백5명 포함)으로 정원(5천1백74명)보다 1백67명이 부족하다. 공중보건의를 제외하면 4백72명이나 모자란 실정이다.

중이염이 재발해 지난 15일 오전 대구의료원을 찾은 金모(67.대구시 서구 평리동)씨는 병원 측에 항의하다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접수창구 직원으로부터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 보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 정원이 12명인 대구적십자병원에는 현재 7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외과.산부인과 등 외과 부문에는 의사가 한명도 없다. 이에 따라 이 병원은 지난해 초 수술실을 폐쇄했다. 수술실의 마취사와 간호사들도 아예 다른 진료부서로 발령을 냈다.

대구의료원도 2년 전에 비뇨기과.이비인후과.피부과를 없앴다. 담당 의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취과.일반외과.산부인과에도 의사가 한명씩뿐이어서 제때에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대구의료원 이동구 원장은 "서민 환자들을 돌려보낼 때에는 공공의료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남 강진의료원은 지난해 말부터 응급수술 환자가 발생할 경우 인근 해남이나 장흥에 있는 마취과 의사에게 긴급 연락을 취한다. 마취과 공중보건의가 지난해에 전역했지만 후임이 충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속초의료원은 공석 중인 의사 5명을 최근 공중보건의로 겨우 채웠다. 하지만 신경외과와 비뇨기과는 아직까지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분야 전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속초의료원 김창헌 원장은 "어렵사리 의사를 구해도 대도시 등으로 자리를 다시 옮기는 경우가 많아 지난 20개월 동안 40여명의 의사가 병원을 떠났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의료원은 지난해 초부터 비뇨기과.이비인후과는 의사가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두명이 필요한 마취과 의사도 한명뿐이다.

이 병원 마취과 전문의 이정회(49)씨는 "두달째 병원에서 생활하는 등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정기환.이찬호.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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