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정권교체의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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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여 년의 한국헌정사는 극히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권력강화의 역사였다.
권력강화의 일반적 「패턴」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당연히 행정권을 장악하는 외에 다수의석을 점한 여당의 당수로서 입법권까지 사실상 통제하에 두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을 생각하면 명백하다.
이런 현상은 당시의 헌법들이 삼권분립을 명백히 규정하지 못한데서온 게 아니라 집권자의 의지와 정치풍토에 더 큰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통령을 삼권의 조정자적인, 「영도적」인 의지로 격상시킨 현 헌법 하에서의 대통령권한 집중은 전례없는 일이다.
흔히 대통령 중심제의 장점으로 안정성·능률성·책임성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 감정사의 경험은 대통령 권력이 강화되면 될수록 오히려 정국은 불안해지고 능률적인 정책 수행보다는 부정·부패의 부작용이 커짐을 보여주었다. 또 이 과정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공무원의 사병 화 현상과 시민적 제 자유가 심하게 위축되는 현상을 나타내었다.
특히 현행헌법 하에서는 국회의 무력화현상이 수반됐다.
이 같은 헌정사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민주주의와 병행하는 진정한 안정과 능률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헌법적 장직가 있어야 할까. 다시 말해 어떤 구조의 정부형태를 취하며 권력의 배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가 당연히 문제된다.
새 헌법 안은 과거 비극적인 헌정사의 원인을 주로 장기집권과 정치풍토에 있었다고 보고 이 두 가지 요인에 대한 집중적인 대책을 설치하고 있는데 최대의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즉 새 헌법 안은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대통령 단임 제를 채택하고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개헌은 하더라도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안 129조②)는 독특한 장치를 두고 있다.
임기에 관한 이 조항은 실상 개헌의 한계를 뜻하는, 다시 말해 개헌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법취지로 해석되는 것이며, 이는 우리 빈 공사가 되풀이해온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의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기어이 달성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개헌으로도 중임이 불가능한 이 같은 단임 제의 채택은 재선을 위한 여러 가지 폐단, 인기전술, 정치자금 염출, 공무원의 정치관여, 여론조작 등을 저지를 염려 없이 임기동안 소신껏 정책을 수행하는 업적을 남기게 하는 효과를 예상케 하는데 장점이 있다. 소신있는 정책추진이 보장되는 만큼 단임 제에는 여론을 중시하는 노력이 특히 요망된다.
단임 제로 하는 대신 임기는 7년으로 하고있는데 이는 4년 임기를 1차에 한해 연임하는 것과 비슷한 기간이다.
북한과의 대치, 정국의 안정 등에 대한 고려가 입법과정에서 중시된 것으로 보인다.
새 대통령은 7년 임기가 적당하다는 것을 재임중 구체적 치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임 제 대통령을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뽑도록 한 제도가 정치풍토 개선을 위한 새 헌법 안의 의지의 표현이다. 이 간선제는 직접선거로 인한 국력소모·국론분열·선동정치 등의 폐단을 막되 선거인단수의 하한을 5천명으로 정해 종래의 통대에 의한 선출보다 국민대표성을 강화하고 정당후보와 무소속후보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다는데 뜻이 있다. 말하자면 직선제와 간선제의 장점을 동시에 채택하자는 취지로 보이는데 앞으로의 운용이 열쇠일 것이다.
권력배분의 면에서 본다면 유신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과도한 권한은 대부분 폐지하거나 축소됐다.
우선 유정회 의원지명과 같은 입법부구성에 대한 관여 권과 법관임명권과 같은 법원인사 관 여권을 폐지했다. 이는 새 헌법 안의 삼권 분립적 기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긴급권이 크게 축소된 점이 주목된다. 유신헌법이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 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을때…』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한 것과는 달리 새 헌법 안은 『…교전상태나 그에 준 하는 중대한 비상사태에 처하여…』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발동요건을 크게 강화한 것이다.
현행 긴급조치권은 위기발생 후에는 물론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도 발동이 가능한 사전 예방 적 조치까지 포함하지만 새 비상 조치 권은 오직 사후발동만 허용하고 그 요건도 「교전상태나 그에 준 하는 비상사태」로 훨씬 엄격하게 규정한 것이다.
아울러 비상조치를 발동할 경우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과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하고 승인을 얻지 못하면 실의케 하며 아울러 발동 후에라도 국회에 해제요구 권을 주고 있다.
또 발효의 기문도 「최단 기문 내에 한정」되도록 명문화 하고있어 현행법의 긴급조치가 갖는 권력 남용 적 요소를 제거했다.
대통령의 개헌관여 권 역시 현행 보다 축소됐다. 현행법은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바로 국민투표에 붙이게 했지만 새 헌법은 이 역시 국회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붙이게 한 것이라고 대 국회 관계에서는 대통령이 여전히 국회해산 권을 갖도록 돼있는데 이는 국회의 내각 불신임 권과 균형을 취한 것이다. 대통령의 국회해산 권 발동에는 국회의장의 자문을 얻어야하고 해산이유를 명시해야한다는 요건이 명문화돼 있다.
이 같은 직접적 권한축소에 더해 국회·법원·기본권 등이 강화됨에 따라 대통령권한의 간접적 축소효과도 생각할 수 있다.
내각의 구성은 현행법과 비슷하다. 의원의 장관겸직에 대한 제한규정을 두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권력배분과는 관련없는 일이지만 국정 자문회의와 평화통일 정책자문회의 등 대통령 자문기구의 설치근거를 새 헌법 안이 두고있음은 바람직하다. 이는 국가원로와 전문가의 경험·지혜가 국정에 흡수될 수 있는 통로의 제도화이자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보다 신중하게 할 수 있다는 효과를 기대케 하는 것이다.
요컨대 새 헌법 안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대통령중심제에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가미한 정부형태를 택하고 있다. 현행 유신헌법하의 「영도적」대통령지위는 인정되지 아니하고 그 권력은 폐지 또는 축소 조정됐다.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우리 헌정사의과제를 실현키 위한 의지로 대통령의 7년 단임 제 및 주기조항 개정 효력제한이란 특별한 장치가 나온 것이 새 헌법 안의 최대의 특색이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관한 새 헌법 안의 이 같은 내용은 제5공화국 정치의 지향과 헌정사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국민의 오랜 염원과도 합치되리라고 생각된다. 다만 과거에도 좋은 헌법이 없어 좋은 정치가 안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정치당사들의 결의와 민주적 양식이 제도 운용에서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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