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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경전으로 폭발한 시아(이란)수니(이라크)파의 반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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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란」과「이라크」전쟁이 표면적으로는 국경분쟁의 양상을 띠고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페르시아」만의 지배권 싸움이다. 「팔레비」시대의「이란」은 만안제일의 군사력과 미국의 지원을 업고 「페르시아」만의 맹주역을 맡아왔다.

<이라크, 맹주자리 노려>
그러나 「이란」 혁명을 계기로 「이란」이 군사적인 강자의 자리를 내놓게되자「페르시아」만에「힘의 공백」이 생겼다.「아랍」세계제일의 공업국가로 부상하고 있는「이라크」는「페르시아」만의 새로운 맹주자리를 노려 「이란」에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이란」혁명의 혼돈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는 그 지역나름의 진통인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 간의 경쟁과 전쟁의 밑바닥에는 뿌리깊은 불화와 반목의 요인이 있으니 그것이 「시아」파(이란) 와 「수니」파(이라크)「이슬람」의 역사적인 대립이다.
「이슬람」의 교단「모하메트」는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생애를 마쳤다. 뒷날「수니」로 불리는 다수파가 교단의 가문출신이 아닌 「아부·바크르」라는 사람(교단의 측근)으로 초대「칼리프」를 선출했다.
「칼리프」란 정교통합지도자를 말한다.「시아」파의 주장대로「모하메트」의 헐통을 이은 인물이「칼리프」가 된 것은 4대의「알리」가 처음이다. 「알리」는 교단의 조카이고 사위였다.
그러나 「알리」는 교권투쟁이 치열한 가운데 661년 암살되고「수니」파가 다시 교권을 잡았다. 「칼리프」자리를 되찾은 「수니」파는 「아랍」제국의 수도를「메카」에서「다마스커스」로옮기고「칼리프」가 통치하는「오마야드」왕조를 세웠다.
「다마스커스」에 대한「시아」파의 항쟁은 가열되고 「수니」파는「시아」파 박해로 대항했다.
「오마야드」왕조의 초대 「칼리프」가 죽었을 때 「알리」의 아들이요 「페르시아」공주와 결혼한「후세인」이 무력반란을 일으켰다가 「바그다드」 남쪽의 「케르발라」에서 전사했다.
「후세인」은 오늘날까지 [시아」파 회교도들이 절대적으로 추앙하는 순교자가 되었고 「케르발라」는 「시아」 파에게는 「메카」못지 않은 성지가 되어「케르발라」를 찾는 「이란」인 순비자의 숫자는 지금도 「이란」과「이라크」관계의 친소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호메이니」가 첫 번째 망명지로「이라크」를 택했다가 결국「파리」로 추방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후계자 지명 안해 불씨>
「수니」와 「시아」의 교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메시아」사상이다.
「시아」파에서는 미세가 오면「이맘」이 나타나 정의와 선이 지배하는 세계를 실현한다고 믿는다. 「시아」파가 말하는「이맘」은 「수니」파에서 처럼 단순히 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하메트」의 정신적인 실체를 구현하는 천상과 지상의 중재자다.
「시아」파에서는「알리」에서 시작하여 874년까지 12명의「이맘」이「모하메트」의 혈통을 이어내려 오다가 열두번째의「이맘」이 나이 네살 또는 다섯 살때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말한다. 그를 일러 「숨은 이맘」(Hidden Imam) 라고 한다.
「숨은 이맘」은 지금도「이란」의 어디에 살아있어 때가 오면 현신하여 부정하고 부패한 자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시아」파 회교도들은 믿는다.
이런 「메시아」 사상이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린「이슬람」혁명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세 상은「카리스마」적이고 반신·반인적인 「이맘」이 통치해야 한다.
반면에「수니」파는「메시아」사상중재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이슬람」교도는 누구나 개개인이 직접「알라」와 대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메이니」의「시아」파는「이맘」이 국가원수였고 「이맘」은 죽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모습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국왕의 통치는 불법이라고 단정한다. 「이맘」의 재림 때까지 누군가가 나라를 통치해야하는데 국왕이 합법적으로 통치하려면「이슬람」최고 성직자들로부터 위임을 받아야 한다.

<서로 다른 메시아사상>
그러나 「이란」의「이슬람」지도자들은 「팔레비」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지 않았다.「팔레비」왕조는 반「이슬람」적인 사회개혁을 단행하여「팔레비」의 부왕시절부터「이슬람」과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정교의 극단적인 대립에 대한 일종의 종합(synthesis)으로 등장하는 것이「이라크」대통령「후세인」같은 사람들이 제창하는「회교적마르크시즘」이다.
회교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맘」이 현신하여 단죄할 대상자 속에는 국왕이 포함될것이 틀림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을 갖춘「이맘」이 여러세기를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이맘」을 하나의 개념, 혁명의 개념, 「쿠데타」의 「이데을로기」로 파악하여 종교적으로는 「호메이니」같은 「시아」파 지도자, 정치적으로는 「페르시아」만안 제국의 국왕과 토후의 반감을 동시들에 샀다.
「이슬람」에서는「모하메트」가 죽은 632년에서 「알리」까지 4사람의「칼리프」가 지배한 29년간을「이슬람」의 황금시대로 꼽는다.「이슬람」이「수니」파와「시아」파 2개의 종파로 분열되어 오늘의「이란」과「이라크」간 전쟁의 역사적인 동기하나를 제공한 것이 바로 그 황금시대였다는 사실은 흥미있는 「아이러니」로 생각된다.
혁명후의 「호메이니」는 「이라크」인구의 45%를 차지하는 「시아」파 교도들에게 「후세인」정부전복을 선동해 왔는데 개전 후에는 「후세인」이 「이란」 서남부 「후제스탄」생일대의 「수니」파 「아랍」족들에게 반「호메이니」봉기를 선동하는 쪽으로 사태가 반전된 것도 「이슬람」 성장사의 맥락에서 보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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