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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고와 수련의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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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일보·동양방송 제정 제6회 「중앙문화대상」이 한 과학자와 한 원로시인에게 돌아갔다.
학술대상엔 『한국곤충분포도감』을 낸 고려대 대학원장 김창환 박사, 예술대상엔 세계기행시집 『서으로 가는 달처럼』을 낸 원로시인 서정주씨.
학·예술계에서 각기 일가를 이루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두분의 수상은 물론 개인의 경사요 영광이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대상」 자체에도 새로 값진 기록을 세움으로써 한결 의의가 깊게 되었다.
그것은 「중앙문화대상」이 올해 처음으로 학술과 예술부문에서 모두 개인에게 돌아가게 된 사실이다.
「중앙문화대상」은 매년 학술과 예술 등 2개 분야에서 과거 3년간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개인이나 단체에 시상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여태까지 두 분야 모두 개인이 수상한 예는 없었다.
학술대상의 경우 75년 제l회 수상자로 역사학회가 결정된 이후 제2회 서울대 풍토병연구소, 제3회 한국물리학회, 제4회 국어국문학회, 제5회 한국철학회 등 수상자 모두가 단체였다.
예술대상의 경우도 제1회 때 동랑극단이 수상자로 결정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개인 수상자를 내게 되었다.
예술부문에선 그간 네 차례나 대상 수상자를 거르고 장려상 수상자로 대신하다가 이번에 비로소 대상 수상자를 낸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1회에 대상 수상자가 모두 단체였고 이번 6회에 대상 수상자가 모두 개인이란 점을 주목하게 된다.
이제까지 대상이 모두 단체에 주어졌다는 것은 어느 의미로는 우리 학·예술계가 아직도 원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증거요, 그런 학자와 예술인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방증도 된다. 학계·예단은 모름지기 온축과 경륜을 요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학자, 한 사람의 예술인이 하루아침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이번에 학술·예술의 두 대상이 개인에게 돌아간 것은 우리 학계·예단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창환 박사는 과거 35년동안 학구에 몸담은 이래 98편의 주요논문과 14권의 저서를 내고 한국동물학회장·곤충학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의 생물학 발전과 후진양성에 공헌했다. 더구나 화려해 보이지도 않는 분야의 학문에 고고하게 정진해온 것이다.
또 미당 서정주 시인은 지난 40여년 동안 꾸준하고 정력적인 시작활동을 통해 「불교적 영생주의」와 「신라정신」으로 표현되는 독자적인 시 세계를 개척함으로써 현대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자연과학자요 시인이란 점에서 각각 별개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이룩한 학문과 시의 세계는 그 어느 것도 결코 쉽사리 그려진 「세계지도」로 간단히 평가될 수는 없다.
이들이 이룩한 학문과 예술이 오랜 각고와 수련의 결정이기에 이들이 획득한 정신세계의 풍요는 값진 것이다.
그 큰 정신적 가치나 노고는 물론 상으로 보상될 순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상 조차도 거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은 그 같은 정신적 가치나 노고를 위로하고 고무하며 사회화하는 역할을 한다.
「중앙문화대상」이 민족문화의 계승·발전과 새 시대-새 문화 창조를 위해 제정되고 매해 이같은 정신적 업적을 상찬하여 온 것도 이같은 상의 사회화를 통해 우리 모두의 보다 나은 미래를 이룩하려는데 뜻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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