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 「추석민정」시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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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두환 대통령은 추석을 이틀 앞둔 21일 하오 서울의 변두리 뒷골목 서민주택·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구로동 근로자숙소 등을 예고없이 방문, 뜻밖에 대통령을 맞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날 하오 1시반 영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청와대를 출발한 전두환 대통령은 먼저 서울강동구마천동 서민주택가에서 승용차를 내려 폭 2m정도의 뒷골목에 대문이 열려있던 마천동3의31 유찬영씨집 마당에 들어섰다.
대지15평에 건평13평 정도의 집에 사는 유씨의 모친과 부인은 『대문이 열려있어 잠깐 들어왔다』는 전 대통령 내외들을 맞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2평 남짓한 안방으로 전 대통령 내외분을 안내한 이들은 『무엇을 대접해야 할지…「사이다」라도 한잔 드시겠느냐』며 감격해했다.
▲어디서 살다 오셨습니까.
-강원도 횡성에서 사는데 이 집은 사위집입니다.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사위가 처남들을 돌보느라고 집을 내주었지요.
▲아드님은 몇이 살며 무엇들을 하지요.
-29세의 큰아들은 방범대원이고 둘째 아들은 변변치않은 직장에 나가고 있으며 그 밑으로 아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벌이는 얼마나 되는지요.
-큰아들이 8만원, 둘째가 벌고 며느리가 동네에 있는 목걸이 공장에 나가 6만원을 타옵니다. 그리고 두 가구를 세들여서 집세를 받고 있습니다.
▲추석준비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네…저희집은 교인인데요…송편이나하고 음식장만도 하고 있습니다.
약10분간 대화를 나눈 뒤 방을 나선 전 대통령은 마당에 내려서 배웅나온 주인 할머니와 세들어 사는 식구들에게 『열심히들 사십시오…그리고 추석도 잘 쇠시고』라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어 전 대통령은 하오 3시 귀성객으로 붐비는 강남의 울산행 고속「버스·터미널」에 들어섰다.「터미널」안의 인파를 헤치면서 간혹 손님을 붙들고 『어디가느냐』고 묻는 전 대통령을 뒤늦게 알아차린 귀성객들은 모두들 놀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터미널」앞에서「콜레라」예방접종을 하고 있던 보건소 직원들도 「노타이」에「스포티」한 상의를 입고 모자를 쓴 전 대톰령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연 한 방문객이 대통령인 줄 모르는 듯 했다.
전 대통령은 혼잡정리를 위해 나와있던 기동경찰 몇명과 악수를 나눈 뒤 고속「버스·터미널」을 떠나 구로동에 있는 한국수출산업공단 생활관을 방문했다.
하오 3시30분쯤 갑작스런 방문에 어리둥절한 생활관 부사감 윤춘옥양은 전 대통령 내외를 침실 식당 취사장 세탁장 체련실 도서실 등으로 안내했다.
이 생활관은 공단에서 근무하는 약 5백명의 여공들이 사는 곳으로 추석을 앞두고 대부분 귀향해 남아있던 30∼40명의 여공들은 전 대롱령의 방문을 무척 반가와했다.
▲아가씨는 고향이 어디지.
-여수예요.
▲왜 시골에 안갔지.
-내일 갑니다.
이 같은 대화도중 전북 남원이 고향이며 영등포 여상야간부를 다닌다는 한 여공은 『지난번에 대통령께서는 왜 저희 학교에 안 오셨느냐』며 『다음에는 꼭 와 달라』고 하기도 했다.
여공들은『내일 고향에 간다니 모두들 잠이 안 오겠군』하며 뗘나려는 전 대통령을 붙들고 『너무 황송하고 기쁘고 반가운데 저희들과 기념촬영을 해 달라』고 해 전 대통령 내외분은 약 4백명의 여공들에 둘러싸여 생활관 현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전 대통령은 『추석 쇠고 돌아오면 이 생활관에서 사는 여러분께 다과회라도 베풀겠다』 면서 생활관을 떠나 청와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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