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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와 육군, 책임 떠넘기기 할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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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1일 밤부터 2일 오전까지 국방부와 육군 관계자들은 전화에 불이 나도록 통화를 했다. 물론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의 파장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31일 군 인권센터가 진상을 공개한 윤 일병 사건은 ‘악마의 구타’에 이어 육군의 진상 은폐 의혹으로 번지고 있었다. 국방부는 평소 2000개 정도 댓글이 올라오면 심각한 사안으로 분류하고 사과나 추가 대책을 논의해 왔다. 그런데 그날 하루에만 비난 댓글이 3만 건에 육박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올라갔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권오성 육군참모 총장을 직접 만나 “총장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육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육군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육군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거나 “총장을 흔들려는 시도”라는 비판적인 목소리까지 나왔다. 국방부와 육군 사이 통화에선 서로 감정을 건드리는 얘기들까지 나왔다고 한다. 국방부와 육군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 충분했다.

 이들이 답답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때 휴가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1일 한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한 장관은 2일 오후에야 부랴부랴 각군 참모총장들을 소집했고, 국방부는 휴일인 토요일에 출입기자들에게 문자와 e메일을 통해 긴급회의 개최 사실을 알리기 바빴다. 뒤늦게 사태 진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놀랍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상황의 엄중함을 모르는 국방부와 군의 ‘둔감함’이 말이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과연 서로 책임 떠넘기기나 하고 있을 때인가.

  박 대통령은 휴가에서 돌아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벌백계(一罰百戒)’를 주문했다.

 권오성 참모총장은 결국 옷을 벗었다. 미리 사과를 하고 진정성 있는 대책을 제시했더라도 책임을 피하긴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무장(武將)답게 보다 당당히 자리에서 내려올 순 있었을 것이다.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갈등 모습만 노출한 국방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6일 발족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한 장관은 “비감(悲感)한 마음으로 왔다”며 인사말을 했다. “육군참모총장이 와야 하는데…”라면서다. 윤 일병 사건으로 육군참모총장까지 떠내려 보냈으니 뒤늦게 비감함을 느낄 만하다. 안이했던 국방부와 육군이 함께 자초한 상황이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