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여평에 각종 과수심어…이웃에 침술 무료 시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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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대산을 근원으로 흘러내린 남한강물이 폭우로 자칫 불어나기만 하면 적성면은 고립된 섬이 된다. 험한 산세가 뒤를 가로막아 육로를 끊고, 유일한 교통수단인 뱃길도 앞을 굽이들아 흐르는 강의 거센 물살로 배를 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정기노선「버스」가 없는 유일한 면인 적성면(충북단양군적성면애곡리)에서 시인 신동문씨(51)는 여름내 포도를 비롯한 과일을 가꾸어 왔다.
신씨가 이곳을 개간하기 시작한 것은 17년전. 만악천봉 도담삼봉 등 단양팔경을 두루 돌아다니다 그 산수의 기이하고 수려함에 도취되어 즉흥적으로 강변 야산 5만평을 계약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워낙 병약하여 자연을 즐겨찾던 터여서 그때부터 이곳에 정왕할 결심을했다. 도시생활 틈틈이 산을 찾아 삽자루를 들고 과수원이며 농토로 땅을 일구었다. 75년에는 아예 짐을 싸서 단신 이곳에 내려왔다. 1남2여의 자녀들이 아직 어려 교육문제도 있고해서 서울집(강서구화곡본동24)은 아내 (남기량·40)에게 맡기고 혼자 시골생활로 뛰어 들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생활방식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동안 1만여평에 20여 종류의 포도 5천주를 심고 사과며 배 밤나무도 가꾸었다. 17년에 걸친 개간이었지만 아직 농사로 소득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신씨는 농사의 어려움을 말해 준다.
신씨의 시골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것은 침술의 무료시술이다. 오랜 세월동안 침술로 스스로의 병을 다스려 왔던 신씨는 시골생활에 들며 이웃에 침술을 무료 시술하기 시작했다.
침술시술의 효과가 널리 알려지자 신씨의 농장에는 하루에도 10여명의 환자가 찾아와 그의 손질을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밭을 갈다가도, 과수를 손질하다가도 환자가 왔다는 기별만 오면 신씨는 손을 씻고 환자에게 달려가곤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농사에 전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시골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농약 뿌리기 등 어려운 일은 혼자 도맡아 한다. 『나는 하지 않으면서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다』는 그의 고운마음씨 때문이다.
침술시술과 농사일 때문에 신씨는 시상에 잠길 여가가 없다. 60년이래 시작을 멈추고 있는 신씨는 지금 병든자를 구하는데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 시 작업은 먼훗날 먼훗날로 미루고 있다고 했다.
『도시인이 시골에 내려가 시골 사람과 물과 돌이 섞이듯 살아갈 수 있는 지혜』 -신씨는 전원생활울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먼저 그 지혜를 배우도록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
글 김증자기자·사진 이호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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