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평양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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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진보적인 하원의원 「스티븐·솔라즈」가 7월초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를 이어 이번에는 바로 두달전까지 차관보급의 국무성대변인으로 있던 「톰·레스턴」이 불쑥 북한을 방문하여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고 있다.
70년대초부터 「하버드」대학의 「제럼·코언」, 「뉴욕·타임즈」의 「해리슨·솔즈버리」, 「워싱턴·포스트」의 「젤리그·해리슨」같은 사람들을 선두로 일부학자· 언론인들의 북한나들이가 계속되어왔고, 77년초 「카터」는 대통령취임하기가 바쁘게 북괴를 포함한 공산권에 대한 미국시민과 영주권자들의 여행제한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조치를 전후하여 북괴는 특히 미국의회를 상대로 비정부수준의 접촉을 트자는 편지공세를 맹렬히 취한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북괴간의 접촉은 그동안 한국계학자들을 포함한 일부 미국인들의 평양방문이라는 「일방통행」으로 그쳐왔다.
「솔라즈」나 「레스턴」의 평양방문도 그 일방통행적 성격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솔라즈」는 하원의원이라는 공식직함을 가진 사람, 미국의 대외정책수립에 활발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며, 「레스턴」은 국무성의 요직에 있던 사람으로 그가 평양여행에서 받은 인상은 말하자면 그의 국무성의 지난날의 동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라는게 과거의 순수 민간인들의 경우와 다르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정부가 이제까지 고수해온 공식입장은 『한국의 참가 없는 미· 북괴간의 대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수준에서 접촉의 실적이 쌓이고, 더구나 거기에 「솔라즈」같은 공직자, 「레스턴」같은 최근까지의 국무성요인이 참여를 한다면 양적 변화가 쌓여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도식적인 변증법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경계할 사태라고 할만하다.
미국사람들은 미· 북괴의 접촉같은 것이 북괴로 하여금 폐쇄성을 벗어나 개방된 국제사회에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하여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논리에 구태여 반론을 제기할 뜻은 없다. 그러나 미·북괴의 접촉의 속도와 폭은 한·소, 그리고 한·중공간의 접촉과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북괴가 미국을 향한 미소정책에서 노리는 일차적인 목표가 자신의 호전성을 감추고 미국여론을 주한미군철수쪽으로 유도하려는 것임은 틀림없다.
한국은 한소접촉확대에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던 「모스크바·올림픽」 참가를 우방에 대한 의리 하나 때문에 포기한 사실을 미국정부는 냉철히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이 북괴의 「의도」에 대한 우리의 거듭된 경고를 소아병적인 투정으로만 돌리지 말고 북괴와의 접촉에 균형의 슬기를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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