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과도정부 시작부터 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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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 과도정부 구성 논의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군정사령관으로 내정된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사령관이 소집한 첫 이라크 지도자 회의가 15일 남부 우르에서 열렸으나 주요 지도자들이 불참하고 시아파들의 대규모 반미 시위가 벌어지는 등 미국의 전후 구상이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다.

시아파 최대 반체제 단체인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 압둘 아지즈 하킴 의장은 "이라크는 미국인이 아닌 이라크인이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필요하다"며 회의에 불참했다.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도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의식해 이날 회의에 대리인을 참석시켰다.

이날 우르 인근 시아파 성지인 나시리야와 바스라.쿠트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재건을 성토했다.

쿠르드족이 많은 북부 모술에서는 미군의 시위 진압 도중 최소 12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부상했다.

시아파 단체들은 "미국이 친미 성향의 찰라비 의장을 과도정부 수반으로 내세우기 위해 자신들을 들러리로 삼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라크인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는 미국 주도의 과도정부 구성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1932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수니파 정권의 탄압을 받은 시아파들은 이번이 정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있다.

미국은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란과 가까운 시아파 지도자를 내세웠다가 미국의 전후 중동구상이 헝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찰라비 의장 등 친미 성향의 수니파 지도자를 과도정부 수반에 앉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시아파의 협조 없이는 민주국가 건설이 불가능한 만큼 미국도 시아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잘마이 칼릴자드 미 대통령 특사는 이날 회의에서 "미국은 이라크를 지배할 의사가 결코 없다"며 "이라크 전통과 가치에 입각해 민주국가를 수립하길 원한다"고 해명했다.

짐 윌킨슨 미 중부군사령부 대변인도 "이날 회의는 전후 이라크 재건을 위한 논의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며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날 셔츠 위에 성조기와 이라크 국기 문양의 핀을 꽂은 군정 행정수반 제이 가너 미 예비역 중장은 "90~1백20일 이내에 이라크인에게 과도정부를 이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이라크의 새 정부가 법치(法治)에 기반한 민주 정부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13개항의 성명을 채택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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