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나는 女性, 기는 男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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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주의 여러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이 남학생들만의 공간이냐며 권리찾기에 나섰단다.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면서 운동장을 독차지해 여학생들은 한쪽에서 얘기를 하거나 줄넘기 놀이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여성인 학생회장들이 나서 요일별 운동장 돌려쓰기, 배드민턴장 만들기, 축구장 제한 사용 등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쉬는 시간의 운동장은 늘 덩치 큰 상급 남학생들의 독무대였다. 한쪽 귀퉁이에서 고무줄 놀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달려와 훼방이 된다며 고무줄을 끊기 일쑤였다. 6학년이 돼서도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것은 여전했다.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와 친구들은 분한 마음에 눈물을 훔치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신통방통'한가. 그러나 정작 주위 남성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여학생들의 제몫 찾기가 당연하다는 긍정론에서, 여학생들도 함께 축구하면 될 텐데 하는 아쉬움, 이젠 초등학교마저 여학생 세상이 됐구나 하는 씁쓸함까지.

하기야 어디 축구가 '남성전용'인가. 여성축구가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고 우리나라에도 3개 실업선수팀을 비롯해 각급 학교에 63개팀이나 있다. 오늘은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그러니 굳이 여학생이라서 축구를 못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여기가 바로 함정이다. 남학생 놀이에 여학생을 끼워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의 제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보성초등학교 서교장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기간제 교사의 차 심부름에 대한 전교조의 과민반응 여부가 도마에 올라 있다. 협박과 항의의 간극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판단은 재판부가 내릴 것이다.

'자살의 이유'와 별개로 나는 서교장의 대척점에 서있는 이들을 주목한다. 차 심부름을 담당한 기간제 교사도, 이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전교조 소속 두 명의 교사도 모두 여성이었다. 왜 여성들은 '차 심부름'에 그토록 공분했을까.

연세대는 최근 교수의 남녀차별적 언어사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평등 지향 수업분위기를 이끄는 데 참고하라고 교수진에게 '성폭력 없는 캠퍼스'자료집을 배포했다. 자료집은 사회 통념상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언어나 행동으로 '업무와 무관한 잡일을 시키는 것'을 꼽고 그 예로 차 심부름과 복사를 들고 있다.

'야유회.술자리 등에서 옆에 앉히거나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함께 블루스를 출 것을 요구하는 식의 '모임에서 성적 유희 대상으로 삼는 것', 어디 감히 여자가 하는 투의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성을 무시하는 발언'과 같은 비중이다. 업무와 상관없이 으레 '차 나르는 여자'가 되는 것은 이처럼 비하의 상징으로 여성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가부장적 문화를 뚫고 가물에 콩나듯 사회에 진출한 여성 1세대들은 '남성세계의 편승'에 안간힘을 썼다. '커피, 카피'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여성 1호'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 노도처럼 몰려오고 있는 여성군단은 1세대식 여성이 아니다. 아들과 차별받지 않고 자라나 일찍부터 평등의식을 체득한 이들은 차별을 감내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

속으로 부아를 삭여가며 잡일을 해서라도 남성사회에 끼어들 수 있다면 만족하던 여성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조차 당당한 주체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다. '나는 여성'의 변화를 '기는 남성'의 속도로 따라가는 한 사회의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홍은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