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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엔 한·중 문화 차 없어 … 手談 나누며 무언의 외교

중앙일보

입력

당(唐) 현종(玄宗)은 바둑을 즐겼다. 남겨진 기보로 보면 5~6급 정도 실력. 기보는 물론 위작(僞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즐긴 건 사실인 듯하다. 하루는 바둑을 두는데 현종이 불리했다. 안색도 변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양귀비가 고양이를 날렸다.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짐짓 놓친 척했던 것이다. 고양이는 바둑판을 쓸어버리고 승패는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귀비는 바둑판만 쳐다보는 현종을 시샘했을지 모르겠다. 현종이 귀비로부터 도피할 유일한 장소가 바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둑과 정치, 같은가 다른가
바둑과 정치. 자주 등장하는 단어 조합이다. 지난달엔 시진핑(習近平·61) 중국 국가주석이 청와대 만찬장에서 이창호(39) 국수의 손을 잡고 반갑게 흔들었다. 며칠 후엔 박근혜(62)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귀한 바둑알과 통을 선물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해엔 시 주석이 중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에게 창하오(常昊·38) 9단을 소개하면서 중국 바둑을 은근히 자랑했다.

 1~2일엔 한국 국회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제2회 바둑교류전이 열렸다. 정협은 중국 공산당을 비롯, 각 정파의 대표, 군대표와 지구대표, 소수민족 대표 등으로 구성된 범국가적인 최고 국정자문회의다.

 한국 의원 10명과 중국 의원 10명이 국회 ‘사랑재’에서 가린 승부에서 한국이 연이틀 7대 3으로 이겼다. 지난해 베이징(北京)에서 제1회 대회를 치른 후 두 번째다. 바둑 두면서 정치를 한다니, 일견 괜찮을 듯도 하고 “무슨 관계지” 하고 의문을 품을 만도 하다.

 바둑과 정치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자주 만나는 이유가 뭘까. 속설이 많다. 바둑 두는 자 궤계(詭計)에 밝아 정치에 능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그러나 세상사 상식은 대부분 부정확하다. 바둑 속에 정치의 이치가 들어있다면 현재 한국의 프로기사 290명 중 국회의원 하나 없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학 교수들 중 전문기사 한 명 없다는 것도 그렇다.

 바둑과 정치를 구별하는 변수 하나는 정보다. 바둑판 위에서는 어떠한 정보도 숨겨지지 않는다. ‘완벽한 정보’ 게임이다.

 하지만 정치에는 정보가 불완전하게 주어진다. 잠시 병법을 생각해보자. 병법의 요점 하나는 궤계인데 궤계는 상대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주는 행위다. 바둑판 위와 전혀 다르다. 바둑판 위에 돌 하나 놓은 후 상대에게 “너는 이 돌 보지 마라” 할 수는 없다.

 정치는 병법을 포함하며 또 정보의 비대칭성이 훨씬 복잡한 세계다. 정보를 국민과 공유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되겠고 독점한다면 독재가 되겠다. 정보가 곧 권력이다.

의원 면담 아닌 구체적 문화교류
한·중 의회 교류전으로 주제를 넘겨보자. 바둑 두는 건 즐겁다. 하지만 한·중 의원들이 굳이 바둑 두는 재미로 만날 리는 없겠다. 실력이 늘고 싶다면 고수를 청하면 될 것이요, 즐기고 싶다면 두면 되지 굳이 비행기 타고 오갈 일은 없다. 그럼 뭘까. 바둑도 즐기고 한·중 의원 외교도 하자, 그것이 답이다. 그래도 의문이다. 외교야 하면 되지, 바둑이 매개가 돼야만 하나.

 국회기우회 회장인 원유철(52) 의원은 “국가 지도자들의 면담 형태가 아닌 구체적인 문화교류”라면서 상징성을 강조했다. “70년대 핑퐁외교가 미·중 데탕트를 가져왔죠. 네트 위를 오가는 탁구공이 곧 이념을 넘어선다는 메시지 아닙니까. 바둑은 수담(手談)이니 말 없는 대화, 진실한 대화죠.”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 의원은 “바둑 한 판 둔 다음엔 십년지기(十年知己)처럼 서로 마음을 털어놓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런가. 바둑을 두면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는가. 답이 있다. 잠재의식 속 부정적인 그림자를 반상에 쏟아부어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유명한 명상(瞑想) 논리가 있다. 화가 날 때 종이를 앞에 두라. 그 위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그려보라. 그러면 종이 위로 마음이 이전(移轉)된다. 종이를 찢어서 던져버려라. 마음은 구체적인 것. 숨겨진 마음은 숲 속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나뭇잎, 즉 카를 융(Carl G. Jung)이 말한 ‘그림자’와 다름이 없다. 습기에 젖어 있다. 햇빛을 비추라. 습기 찬 나뭇잎이 사라지리라. 억눌린 감정의 뭉치가 사라지는 이치, 그와 같다.

정쟁하며 타협 끌어낼 수 있는 게 바둑
바둑은 상징성이 큰 문화 텍스트다. 시 주석은 지난해와 올해 바둑을 몇 번 언급했고 언론은 보도했다. 변화가 일어났다. 그에게 지자(智者)라는 이미지가 새겨졌다. 왜 그런가. 바둑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속성 때문에 정치는 바둑에 비유되곤 했다. 수담은 무위(無爲)로 세상 다루는 노장(老莊)의 지혜와 비슷하다. 그런 문화적 이미지가 시 주석에 투사되었다.

 김종필(88)은 바둑을 좋아했다. 5급이었다. 정치적 외유(外遊) 등 격동 속에서도 언제나 가까이 했다. 68년 그는 낙마했다. 당(黨) 권력을 잃었다. 6월 2일 공화당 탈당계를 제출한 후 그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해운대 극동호텔에서 구태회(91) 의원과 한가롭게 바둑을 두었다. 그 장면이 기자의 눈에 잡혔다.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의 정치적 좌절이 국민의 눈에 빨리듯이 들어왔다. 바둑의 풍운조화, 좌절과 역경… 모든 것이 오버랩됐다. 국민은 알았다. “아, 정치란 저런 거구나.”

 바둑의 상징을 통해 정치가 이해됐다. 정치란 복잡하구나. 인생사도 정치도 바둑도 다 비슷비슷하구나. 실제로 정치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정치란 보듬어야 할 인생처럼 고운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정쟁(政爭)은 해도 좋다. 다만 여야는 바둑이라도 두면서 정쟁을 해야 한다.

 놀이를 모르는 정치인, 엄격한 군자 타입 정치인은 곤란하다. 도덕군자는 대개 음험한 그림자를 의식 속에 갈무리한 사람들이다. 그래선 안 된다. 술도 먹고 잡담도 해서 탁한 내면을 풀어 던져야 한다. 바둑판에서 대판 싸워 쓸모 없는 증오는 던져버려야 한다.

 서울 관철동 한국기원에서 바둑을 즐겼던 신상우(1937~2012) 의원은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능했다. 15~16대 국회 때 한·일 의원 바둑대회도 열곤 했다. 하지만 17대엔 바둑이 사라졌다. 바둑 두던 의원들이 낙선했기 때문이다. 짐작건대 조사해보면 17대엔 싸구려 정쟁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집은 오가는 길목이 좋았다. 많은 정치인이 오가다가 들렀고 술과 차가 뒤따랐다. 바둑 두는 시간엔 대화가 있어 정보도 부드럽게 모여 들었다. 윤보선이 정치적 힘을 기르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국회 원내총무 제도도 그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사랑방 연락책에서 총무로 제도화되었다.

 정치인은 바둑 좀 둘 줄 알아야 한다. 바둑이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하나도 갖지 못한다면 웃음 없는 정치인과 다름이 없다. 정치인은 상징으로 국민에게 어필하는 사람들. 상징적 이미지도 갖고 놀 수 없다면 대체 어떤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최근 정치의 상징적 화두 하나는 상생(相生)이다. 자연과의 상생, 남북 간의 상생…. 이번 대회에서 만난 유인태(66) 의원은 “바둑이란 게 정치와 비슷하다. 변화가 끊임없다는 것이 그렇다. 승리를 원하지만 상생을 전제한 승리라는 점도 그렇다”고 했다. 유 의원은 잘 둔다. 프로에게 넉 점 접히는 실력이다.

“바둑 두는 의원 대부분 친화력 좋아”
중국인 린하이펑(林海峯·72) 9단이 1960년대에 일본인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1920~2010)에게 도전할 때다. 그는 묵묵하고 태산 같은 태도로 사카다의 귀수·묘수 세계를 유장하게 대처했다. 일본 바둑계는 ‘대륙성 짙은 바둑’이라면서 민족성으로 그의 반상 세계를 풀어냈다.

 중국은 스케일 큰 문화로 유명하다. 의원들의 태도와 바둑을 지켜보았다. 과연 그런 문화적 차이가 반상에서도 드러날 것인가.

 이인제(66) 의원은 신중했다. 장고를 거듭해 첫날 가장 늦게 대국을 끝냈다. 김기선(62) 의원은 아주 잘 닦인 수준급. 프로에게 두 점 치수였다. 유인태 의원은 대범한 기풍이었다. 좌우 큰 규모로 진(陣)을 펼친 다음 상대를 크게 공격했다.

 중국의 쑨화이산(孫懷山·62) 의원은 실력은 약했지만 속기가 인상적이었다. 창전밍(常振明·58) 의원은 79년 전국대회에서 녜웨이핑(?衛平·62) 9단, 천주더(陳祖德·1944~2012) 9단에 이어 3위에 입상한 실력이니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속기도 있었고 장고도 있었다. 실리와 세력은 서로서로 오갔다. 세력과 스케일은 다른 것이었다.

 두 나라 의원들 간에 문화적 차이는 없었다. 멀리 내다보는 것을 ‘스케일 큰 안목’이라고 한다면,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에 일희일비 않는 것. 사소한 문화적 갈등에 얽매이지 않는 것. 그것이 큰 스케일이다.

 그러니 한·중 의원들 간에 문화적 차이가 반상엔 없다는 것은 당연했다. 단지 반상을 얼마나 넓고 멀리 보느냐. 그것이 초점이다. 정치에서도 그것이 요점이다. 함께 내한한 중국기원 류쓰밍(劉思明·60) 원장이 “정치인들은 넓은 시야를 갖는 편”이라며 “바둑 두는 의원은 대부분이 친화력이 큰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겠다. 정치는 친화력이다. 너와 내가 다르니 드넓은 중국에는 서로 공존하는 기술이 더욱 요긴할 터다.



한·중 의원 바둑대회 참가자

▶한국
김기선·김민기·김성찬·노영민·문병호·박상은·설훈·오제세·원유철·이인제·유인태·정우택·최규성

▶중국
궁진화(?錦華)·두잉(杜?)·레이샹(雷翔)·리잉제(李英杰)·쑨화이산(孫懷山)·옌중추(?仲秋)·창전밍(常振明)·탕융(湯涌)·펑쉐펑(彭雪峰)·황젠추(黃建初)

문용직 객원기자 moon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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