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국 누비던 폭력조직 2백여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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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양은. 30세. 폭력전과 5범. 광주S고 중퇴. 서울명동에서 양장점 경영(72년). 74년 「호남파」에 입단. 76년3월 「양은파」를 설립, 두목이 됨. 귀공자형. 독사같이 표독함. 바지가랑이 속에 항상 「사시미」 칼을 차고 다님-.
국보위의 일제단속이 있기 전까지 가장 악명 높던 폭력조직 양은파 두목의 신상명세다.
부나비가 등불을 향해 몰리듯 폭력배는「오야분」을 중심으로「조직」을 형성한다.
폭력배도 하나의 인간으로서「번뇌」를 안고있다. 이들은 법의 보호도 세상의 동경이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공통적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은 결코 「강자」가 아니라 「사회의 패자」일 뿐이다.
가장 악명 높던 양은파
「오야분」파 식구관계로 나타나는 그들 특유의 전근대적조직 윤리도 뒤집어보면 어디 엔가 몸을 기대어 보려고 하는「약자」의 심리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폭력배의 조직은 바로 자기보존의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조직의 힘을 배경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이것을 자본으로 삼아「라이벌」과 대결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폭력배들에게는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폭력조직이 가장 설치던 시기는 말할 것도 없이 이정재· 김두한 등 거물급 「오야분」들이「용호의 대결」을 벌였던 50년대이다.·
그러나 4·19와 5·16으로 주먹의 조직이 박살나고 「주먹 천하」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세대교체를 했다.
최근까지 악명을 떨친 폭력조직은 서울에만도 「OB파」·「서방파」·「호남파」·「양은파」등 4대 조직 외에 군소 조직이 50∼60개가 넘었다.
이들은 지방조직과도 연결돼있다.
조직폭력배의 편싸움이 꼬리를 물었던 광주시내의 경우 「OB파」·「동아파」·「서방파」·「시민파」·「대인파」 등 5개로 최근 국보위의 일제소탕이 있기 직전까지 만도 「OB파」는 45명의 식구를 거느려왔다. 이 밖에 「서방파」 30여명, 「동아파」15명, 「대인파」·「시민파」가 각각 10여명으로 1백 명을 웃돌았다.
이들 폭력조직은 57년부터 생기기 시작한 「켓세라」·「행여나」·「들장미」등 학생폭력「서클」에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다.
폭력 「서클」의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태호파」·「충장파」 등 본격 조직깡패로 성장하고 이들 파벌의 「보스」들이 부침을 거듭하면서 67∼72년 사이에는 우후죽순처럼 조직이 마구 돋아났다. 이때 나타난 대표적인 조직이 오늘날 서울까지 진출한 「0B파」·「서방파」등이다. 「시민파」와 「대인파」는 여기에서 다시 갈라져 나간 것.
항구와 남포동을 끼고있는 부산의 경우「20세기 칠성파」를 비롯, 「갈매기파」「갈구리파」 「대교파」 「서면파」 등 20여 개 조직에 1천6백99명(경찰조사)이 주먹을 휘둘러왔다.
조직폭력배의 터전은 언제나 유흥가이지만 연예가·「버스·터미널」·도박판을 무대로 한 폭력배도 많다. 그 계보는 상황변화에 따라 난합집단을 거듭하며 끝없는 대결을 벌인다.
현재 서울 비롯, 부산·대구·인천·광주 등 전국의 폭력조직은 크고 각은 것을 합쳐 2백여 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흥가 폭력조직으로는 역시 명동의 「갑상사파」를 손꼽는다.
6·25때 월남하여 명동에서 터를 닦은 이화룡의「아우」뻘인 주먹들이 60년 초 「갑상사파」를 구성했다.
이들은 72년 광주출신 「OB파」·「단방파」가 도전해 올 때까지 10년 이상 독무대를 누렸다.
명동을 중심으로 충무로·을지로의 유흥가를 손아귀에 넣고 1백 명 이상의 대가족을 이루었다.
학생 폭력서클이 시초
그러나 식구들이 당국의 단속에 걸려하나 둘씩 구속되고 7O년대로 넘어오면서 나이가 들어 손을 떼게 되자 새 식구를 보충하지 못한 채 점차 세력이 약화, 광주출신 폭력배들의 연합전선에 밀려 이제는 그 명맥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폭력조직도 그 조직자체가 커지는데 따라「오야분」의 관리능력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 해진다. 이는 일반 여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인력관리·조직관리능력이 없는 폭력배들이 70∼1백 명의 대식구를 쉽게 유지할 수는 없었다.
곳곳에 술집이 늘어나고 대 조직의 소 두목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새살림을 차려나갔다. 이른바 「분가」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OB파는 「동제파」 「현삼이파」 「구OB파」 「시민파」 「무교동파」 「경학모파」 등으로 나누어졌고 서방 파는 「태촌파」「성광파」 「호남파」 「양은파」 「순천파」등 독자조직을 이뤄나갔다. 여기서 폭력조직의「계보」 가 형성된다. 조직이 늘어나면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고 경쟁이 격화된다.
유흥가를 날뛰던 폭력배들이 연예인들의 밤무대로 검은 손을 뻗쳐 나갔다.
「탤런트」K양의「강제 동거사건」대표적인 「케이스」
K양은 76년 가을 방송국에서 녹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충무로「번개파」두목 박(27)에게 승용차로 납치돼 강제로 봉욕을 당했다. 또 「대부파」의 돌멩이 강매사건 역시 널리 알려진 일.
연예가도 10여 개 조직
가수 정모양 등 밤무대 출연 연예인들에게 툭하면 외상술값을 뒤집어씌우던 「대부파」는 엉터리 돌멩이를 수석(당석)이라고 우겨 1개 에 50∼1백만 원씩 받고 강매했다. 한때 연예가 폭력배 조직은 10개가 넘었다.
지난4월 경찰에 구속된 조용기(21)는 「해결사」라는 이름의 경제폭력배.
저은 경제불황으로 채권자들이 빚을 못 받아 고심하고있는 세태를 이용했다.
조는 신문에『어려운 일 상담. 무엇이든지 해결해줌』이라는 광고까지 내고 빚을 못 받는 채권자들로부터 상담료 5천 원과 D%의 수수료를 받고 채무자를 협박 ,빚을 대신 받아주었다.
이 같은「해결사」는 이외에도「민 대위파」를 비롯, 전문조직 7∼8개 파가 암약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차잡이」폭력배, 「낙가시」폭력배, 「총 회꾼」, 「입찰」 폭력배 등 여러가지 폭력배들이 사회 곳곳에 악의 뿌리를 박고 있다.

<추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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