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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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스라엘」의 수도는「텔아비브」로 생각하기 쉽다. 관청이나 외국대사관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텔아비브」에서 비행기로 20분, 급행열차로 1시간50분쯤 동쪽으로 가면 성도「예루살렘」에 닿는다. 「이스라엘」은 1948년 이 도시를 수도로 선포했었다.
지리를 펴보면「예루살렘」은 마치 화약고 옆에 있는 화염과 같다. 중동의 강경「아랍」국들이 품에 안듯「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다. 「이스라엘」이 정작 이 도시를 수도로 삼고 있으면서도 정치의 중심은 「텔아비브」에 두고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존재와 전통성을 과시하는 상징의 도시인 것 같다. 따라서 「크네세트」(의회)는 이곳에 두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예루살렘」은 또 다른 상징을 갖고 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평화의 도시」인 것이다. 신약성서를 보면 이 도시는 고대「가나안」사람들의 수부이며, 「다윗」왕의 점령지이고 예언 설들의 활동무대였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들었던 「올리브」 산의 「겟새마네」동산도 여기에 있다. 예수의 죽음·부활·승천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도시를 성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도들만이 아니다.「아라비아」인들도 「예루살렘」을「엘·쿠드스」라고 부른다. 「신성한 도시」라는 뜻이다. 기원638년 「아라비아」인들이 이곳을 점령,「이슬람」교국으로 만들고 나서「마호메트」의 교지가 된 것이다. 「마호메트」가 꿈의 천사「가브리엘」에 인도되어 「알라」 신에게 갔다는 승천의 장소도 남아있다.
아득히 기원전 37년엔「예루살렘」이 「헤롯」왕에 점령되면서 유태교의 성지가 되었다.
「헤롯」왕이 그때 세운 신전은 아직도 남아있어 『탄식의 벽』으로 불린다.「로마」군에 의해 이 고도가 짓밟혔던 것을 한탄하는 벽이다. 「다윗」왕 이후 3천년. 「예루살렘」은 이처럼 각종구사이의 쟁탈전을 28차례나 겪었다. 성지도 지금은 대부분 각종교의 「착합물」 이 되어있다.
2차대전후인 1948년「예루살렘」은 「유대」와 「아랍」지역으로 양분되어 「이스라엘」 은 그 서쪽을 차지하고 수도로 삼아왔다. 1967년 3차 중동 전 때 「이스라엘」은 나머지 반쪽인 속 「예루살렘」마저 점령해 버렸다.
지금은 「유대」인 30만, 「아랍」인 10만의 도시. 「이스라엘」은「아랍」 「게릴라」들의 위협 속에서도 그 동안 건설을 서둘러 왔었다. 지금의 시장「테디·골레크」는 분쟁조정의 명수로 알려진 인물. 지난주엔 「이스라엘」의회에서 69대15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이 도시를 영구 수도로 만들어 버렸다.「아랍」 제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다시금 석유무기화의 소리가 드높다. 「평화의 도시」, 「신성한 도시」의 역사가 무색하게 되었다.
국제여론은「협상」을 종용하는 쪽이다. 협상이 곧 해결은 아니지만, 협상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만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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