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누리는 연극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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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술 전시회와 음악회, 그리고 영화 관객까지 크게 줄어 든 요즘 유독 연극만이 관객을 유지해 각 극단들은 한여름의 더위도 잊은 채 연극 공연에 열중하고 있다.
보통 7∼8월, 특히 8월 한 달은 연극계의 「시즌·호프」로 여겨져 왔는데 올 여름에는 복중의 하반기도 아랑곳없이 공연이 줄을 이어 서울의 대소 공연장은 8월말까지 대관「스케줄」이 잡혀있다.
8윌 말까지 공연 일자가 결정된 극만은 「에저또」「신협」「민중」「여인」「실험」「춘추」「맥토」「자유」「작업」「가교」「민예」「현대」「76」「대하」 등 14개 단체.
이들은 연극 회관 「세실」극장·공간 사랑·명화「엘칸토」 예술 극장·국립극장·민중 소극장·실험 소극장을 무대로 공연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강원도 하주군 진압 해수욕장의 「천막극장」,강원도 묵호시 망상 해수욕장의「해변 연극 페스티벌」, 설악 「파크·호텔」의 초청 공연 등 피서지에서의 공연도 그 어느 해 보다 활발하다.
막만 계속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 동원 성적도 예상외로 좋은 편. 극단 「실험극장」의 『티·타임의 정사』의 경우 지낸 6월12일부터 시작해서 7월 29일 현재 1만5천 여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극단 측은『연일 몰리는 관객으로 인해 8월10일까지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고.
명동 「엘칸토」예술 극장에서 공연 중인『당신 멋대로 생각하세요』(7월31일까지)도 현재 5천명을 넘어서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이 작품의 연출자는 문고헌씨(극단「춘추」대표)는『지난해 창단 한 이래 우리 극단으로서는 가장 많은 관객 수』라고 말했다.
이러한 연극계의 「작은 호황」에 대해 연극인들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들.
연출가 윤호진씨는『공연장이 옛 명동 예술 극장 하나였을 때는 여름에 쉬고 싶지 않아도, 쉴 수밖에 없었다』면서 『부족하나마 5∼6군데의 극장이 확보된 것이 연극이 여름을 타지 않게 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나라 같이 아직 연극 전문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후진 양성과 극단 유지를 위해서라도 공연은 끊기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
연극 협회 이사장 기정옥씨(연출가·중앙대 교수)도 『공연이 활발한 것은 어쨌든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견해를 보였다.
관객이 몰리는 것에 대해서는 반전 운동 등 한참 어려움을 겪던 60년대 정국에서 연극이 가장 번성했었다는 사실에 비추이어 우리 나라 관객들도 전환기의 정서적 혼란을 연극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올 여름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희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
극단 「춘추」의 『당신 멋대로 생각하세요』(「앨런·에이크번」(작), 「민중」의 『스트립티스』( 「슬라브미르·므르체크」(작),「각언」의 『벙어리 마누라를 얻은 판사』(「아나톨·프랑스 작),「에저똔의『이상한 부부』(「닐·사이먼작),「개」의 『루브』(「머례이·시스검」작),「민예」의 『춤추는 말뚝이』(장소신 작),「현대」의 『우리들의 광대』(유뢰술 작)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대부분이 번역극. 극단 측은『여름에는 무더위로 집중력이 약해져 가볍고 재미있는 「코미디」가 환영받는다』고 말한다. 무겁고 정리되지 않은 참가 극보다는 잘 알려진「코미디」를 공연하는 게 흥행 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연극 평론가 이태주씨(단국대 교수)는 『극단의 「레퍼토리」선정이 너무 안이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날씨가 좀 덥다고 희극 일색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연극은 진지해야하며 작품도 극단의 발전과 성격 수립이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
평론가 한상철씨(성심 여대 교수)도『모든 것을 가볍게 웃어넘기려는 「트리비얼리즘」은 진지성과 성실성이 결여된 문화로서 그 자체가 병든 문화』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연출가 김도연씨는『요즘 연극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리바이벌」물로서 이런 것을 가지고 호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연극의 사회적 교육적 기능이 그 어느 매보다도 요구되는 이때 연극인들이 안이한 자세를 탈피, 관객이 원하는 무언가를 보여 주려는 진지한 노력을 않는 한 관객들은 곧 떠나 버리고 말리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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