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열력학적 과제 | 최동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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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더스·헉슬리」가 30년 발표한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과 「조지·오웰」이 48년 발표한 『1984년』이라는 소설은 경직된 인류사회를 전율할 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두 영국인의 예지와 통찰은 산업사회의 기계문명에 대한 반발과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경종으로만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인류문화 장래에 대한 그들의 걱정을 「문제점」으로 남겨 주었고 이 숙제를 풀어야할 때가 온 것이라 여겨진다.
인류문화란 자연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현대문명의 특징이 되는 기술의 발전은 여지껏 자원과 「에너지」를 인류사회의 발전보다 빨리 공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회의 「에너지」는 절대적으로도 평균적으로도 증가했기 때문에 사회의 온도와 압력은 함께 높아지고 있다. 얼음에 열을 가해주면 온도가 올라가다가 드디어 섭씨 영도에서 녹아 물이 되기 시작하듯이 왕족·귀족·양반처럼 지배층에 눌려있던 농어민·노동층·상놈과 같은 굳어있던 층이 녹기 시작하여 기술을 습득하고 전문직종에 종사하면서 새로운 기술관료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기존의 두 층 사이의 구분이 점차 없어지면서 그 공백을 중산층이 완전히 메워 특권이나 재산·소득·인기 등 평가의 모든 면에서 연속적인 분포가 형성되는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회계층이 없어진 때를 해방 후에서 구태여 찾아본다면, 세상이나 사람팔자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준 6·25동란 후라고 우기고 싶다. 깊은 산속 촌부도 하늘을 날으는 비행기와 들도 산도 잘 달리는 「지프」가 얼마나 빠른지 보았고 「탱크」나 대포 등 무기의 위력도 알았으며, 「초콜릿」과 껌의 단맛, 미제물건의 우월성을 깨달았고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고 이길 수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전쟁을 통한 격렬한 뒤섞임과 강렬한 깨달음은 우리 국민성을 폐쇄적인데서 개방적으로, 수동적인데서 능동적으로, 관습적인 것을 합리적인 것으로 바꾸기에 충분하였으며 비로소 근대화 작업이 마무리 지어질 수 있었다.
제3세계니 비동맹국가니 하여 근대화 작업이 한창이거나 그 상태를 갓 넘어선 국가들의 움직임도 재미있다.
국제적 경쟁력을 군사·무역·외교면에서 기르기 위해서 국내 행정력을 늘려주면서 국민의 권리를 축소시키면 즉, 사회압력을 높이고 사회온도를 낮추면 곧바로 자원·「에너지」·기술협력의 대미 의존도에 차질이 오게 되고 이러한 사회 「에너지」 충당을 위해선 또 민주진영 쪽에 추파를 던지는 정책을 세워서 재보급을 받는 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 바로 제3세계 발전을 위한 발버둥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만일 전세계가 계속 기약없는 「에너지」난에 허덕이게 된다면 『1984년』의 참담한 양상이 현실화되어 나타날 것이며, 「에너지」문제가 해결된다면 『멋진 신세계』로 이르는 「바이오닉스」 (생물전자학)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문제가 절박한 상황이라 다들 잊고 있지만, 이렇듯 인류 전체의 사회 열력학적 과제는 심각하고 절실하다 하겠다. <고려대 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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