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파벌 균형」에 주안 둔 「스즈끼」내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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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자민당은 각계 이익 집단을 대표하는 파벌 연합당이고 파벌은 자민당의 정치 단위이다. 그러면서도 자민당 일당 지배가 25년간이나 유지되고 있는 비결은 이 파벌 균형에 있다. 「오오히라」파는 「오오히라」의 대를 이을 「보스」로 「스즈끼」를 옹립해 「세번째 집권」에 성공행다. 「이께다」파를 계승한 「오오히라」파는 한파벌이 두번 집권한 저력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공중 분해 의견 일치>
「오오히라」파의 가신 「이또」 전 수상대리, 「다나까」 전 관방장관은『「오오히라」가 「미야자와」 전 외상을 싫어했고 따라서 「미야자와」를 「오오히라」파의 새「보스」로 추대하면 「오오히라」파는 공중분해 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사이또」 전 간사장과도 협의, 「스즈끼」를 「보스」로 추대했다. 「오오히라」파의 세 번째 「집권 전략」은 보수 본류가 대동 단결하자는 것이었다.
자민당 파벌사를 미시적으로 보면『「요시다」학교』 졸업생 (본류)과 비졸업생 (방류)의 항쟁사다.
보수여당 자민당의 기반을 닦은 「요시다」 학교 졸업생-본류는 「이께다」「사또」 「기시」 「다나까」 「후꾸다」 「오오히라」로 이어지고 있고, 비졸업생-방류는 「미끼」 「나까소네」파가 대표적 세력이다.
물론 방류의 도전이 없을 때는「요시다」학교의 적자간 및 적자-서자간의 전쟁이 터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전 3선 반대」를 둘러싼「이께다-사또 대결」의「요시다」학교 우등생끼리의 정권 투쟁과 「각·복 전쟁」으로 불리는「사또」후계 전에서의「다나까」(적자)-「후꾸다」(서자) 싸움 등.
그러나 유사시에는 역시 본류는 단합하게 마련이다. 「본류 조직 방위」의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포스트·오오히라」전은 본류(영목)와 방류 (하본·중증근)의 싸움이었다.「오오히라」파의 본류 단합 전략은 바로 본류 서자인「후꾸다」파를 끌어 들여『「오오히라」「다나까」「후꾸다」』파에 의한 신주류를 형성하자는 것.
「오오히라」파의 「다나까·로꾸스께」는「후꾸다」파의「프린스」「아베」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후꾸다」파의 원조「기시」전 수상도 「다나까」전 수상과 비밀리에 회담, 불편했던「오오히라」-「후꾸다」파의 관계 회복을 지원했다.
보수 본류인 「다나까」파가 「스즈끼」를 지지하지 않을 리는 없겠지만 만일에 대비,「사이또」가 미리「다나까」파의 양해를 받았다.

<신인 늘어났지만>
「오오히라」「다나까」「후꾸다」파의 보수 본류 세력은 2백60여명. 자민당 소속 양원 의원 과반수 (2백12명)를 50여표나 웃도는 숫자다.
이러한 대세를 등에 업은「스즈끼」 정권 탄생을 계기로 자민당 파벌 정치는 두가지 새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자민당 파벌은 5개 사단 (대평·전중·복전·삼목·중증근) 3개 연대(수전·선전·추명) 1개 소대(중천).
70년대를 주름잡았던「미끼」「다나까」「후꾸다」「오오히라」의 장로 정치가 막을 내리고 파벌「보스」가「다나까」와 「나까소네」파를 제외하고는「스즈끼」「아베」「고오모또」로 승계 되고 있다. 둘째 「스즈끼」 정권 탄생에서는 보수 본류 세력이 너무나 막강해 방류는 어느새 정면 도전을 포기, 참여하의 투쟁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는 권모술수, 「포스트」 흥정, 극한 투쟁이 판을 쳤던 전후 자민당 파벌사를 볼 때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스즈끼」 내각도 파벌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파벌 해소·세대 교체론이 구가 됐어도 파벌 균형·구세대 체제로 「스즈끼」내각이 짜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민당의 제질로 미루어 불가피한 결과로 해석된다.
「스즈끼」내각은「오오히라」파 6,「다나까」「후꾸다」파 각 4명으로 보수 본류가 주류를 이루고있다.「나까소네」와「고오모또」가 각각 2명, 무 파벌 8명,「나까가와」파의 영수를 포함시킴으로써 파벌균형을 이루었다.

<전중 파 영향력 미쳐>
관방·외무·통산·후생·우정의 5개 주요「포스트」는「오오히라」파가 차지했고 운수·우정·노동·건설·자치·방위·총무·환경청 등 8개 부처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신인을 입각시켰다. 그렇다해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스즈끼」내각은 평균 66·7세로「오오히라」내각의 61·7세보다 오히려 5세나 늙었다.
「스즈끼」내각구성에 있어 주목할 일은「다나까」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외형의 입각비율은 같으나 건설·농수산·자치 등 비교적 중요「포스트」에「다나까」파를 기용했고 무파벌 2명도「다나까」전 수상과 비교적 가까운 인사다.
또「다나까」파의「니까이도」씨를 당 총무회장에 기용,「록히드」사건 관련 의원들의「복권」이 이루어졌다.「화의정치」를 내건「스즈끼」수상이 파별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 가느냐에 따라「스즈끼」내각의 장래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동경=김두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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