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실권 거의 김정일이 장악|월남 귀순한 이영우씨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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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괴는 주요 공장·기업체를 갱도 속에 들여놓고 지난 4, 5월에는 전 주민에 대해 혈액형 검사를 실시하는 등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월남 귀순한 이영우씨(35)가 12일 전했다. 이씨는 또 「10·26사태」「광주사태」때는 인민군에 비상이 발령돼 전투준비 태세에 들어간 일이 있다고 말했다. 12일 육군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씨와의 1문1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정경력-개성시 판문군 판문읍 83(구 경기도 개풍군) 에서 67세의 노모와 인민학교 교원인 처, 그리고 7, 4세의 딸 둘이 같이 살았다. 세 누이동생과 군인중사로 있는 동생도 있었다.
흉왕인민학교·판문남중을 거쳐 판문농업기술학교 2년을 수료한 뒤 63년 해군에 입대, 72년 특무상사로 제대했다. 군에 있으면서 노동당에 입당했고, 75년에는 개성공산대학을 6개월 수료했다. 그 뒤 판문군의 양점사업소 노동자, 체육회관 지도원 등을 거쳐 월남직전까지 판문일반용품 수매사업소 세포비서 겸 공급지도원으로 있었다.
귀순동기- TV·「라디오」등 남한방송을 듣고 자유가 있는 남한을 동경해왔다. 그런데 지난 4월17일 상급당이 수매실적부진과 당 생활 지도력부족 등을 이유로 판문일반용품 수매사업소에서 상도리 협동농장으로 전직시켰다.
일반용품 수매사업소에서 매월 1천원 이상의 이익금을 국가에 납부토록 돼있었으나 7백∼8백원의 실적밖에 올리지 못했다.
인민학교 교원인 처는 나와 이혼하는 일이 있어도 협동농장에는 못 가겠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직명령을 받고도 자리를 옮기지 않자 월남 3일전인 지난 6월 26일 판문군 당에서는 『3일 이내에 농장으로 가지 않으면 출당 시키겠다』 고 했다. 농장으로 가든, 당에서 쫓겨나든 비참한 생활을 해야하는 입장이 돼 월남을 결심했다.
귀순경위- 6월28일 하 오5시 「튜브」와 「뺀찌」 등을 갖고 자전거로 집을 떠나 덕수리에 도착, 산길을 따라 남하해 리만리49고지의「아카시아」 숲에서 하룻밤과 낮을 지내면서 탈출로를 모색했다.
29일 새벽1시쯤 농사용 배수로 관 입구의 철조망을「뺀찌」 로 끊고 토관을 통과했다. 임진강에 뛰어들어「튜브」를 타고 헤엄쳐 국군초소에 도착, 귀순했다.
수매사업소- 북괴는 전쟁준비로 인한 경제난 해소를 위해 군 단위별로 수매사업소를 운영, 폐자재와 농산물을 사들이고 있다. 일반용품수매사업소와 식료품수매사업소가 있는데 일반용품수매사업소는 각이(이)에 있는 고철·빈 병·헌 고무신짝·개가죽·토끼가죽 등을 사들여 각 공장에 판매한다.
주민생활- 판문군은 평양에 이어 북한에서는 주민생활이 윤택하다는 곳이다. 그런데 식량사정d을 보면 1일 배급량이 노동자·사무원이 7백g인데「전쟁비축미」라는 이름으로 1백g을 떼어 6백g씩이고 노인·어린이는 3백g씩인데 그나마 옥수수 7, 쌀 3의 비율이다. 절대량이 모자라 대부분 하루 한 두끼는 죽을 먹어야 한다.
고기는 먹을 수가 없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 김정일 생일인 2월16일. 그리고 1월1일에 한 가구에 5백g의 돼지고기가 배급된다.
전쟁준비- 배급량에서 공제한 식량을 각 군별로 비축, 저장해 놓고 있다. 매년 7일간씩 모든 화물차량을 동원, 전쟁물자 운반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금년에는 지난 2월에 이 훈련을 실시했다.
17∼40세로 훈련을 실시하던 노농적위대 등록연령을 60세까지로 연장하고 매주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 학생으로 조직된 붉은 천년근위대·직장교도대와 함께 1년에 1개월씩의 집단훈련을 받아 사격·전술훈련 등을 하고있다.
또 북한에는 비둘기가 한 마리도 없다. 평화를 상징한다고 해서 비둘기를 모두 잡아 죽였고 비둘기의 그림마저 그리지 못 하게 한다. 비둘기를 그리면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할 정도로 국민의 사상을 전쟁준비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유류사정- 78년 초부터 일반차량은 월 15일동안만 운행토록 하다가 이해 말에 김일성은 모든 화물차를 목탄차로 개조토록 했다.
목탄차는 무연탄을 조개알처럼 만들어 불을 피워 운행하는데 그나마 가동율은 20%도 못되는 실정이다.
한국사태와 북괴조치-「10·26사태」 직후 『인민들의 여론을 수집하라』 는 당의 지시가 있었다.
내가 일하던, 수매사업소에서는 『잘 됐다. 이 기회에 남조선을 해방시켜야한다』는 여론을 보고한 일이 있다.
이때 판문점에는 비상이 발령되고 노농적위대가 출동, 요소에 잠복 근무했다.
인민군에도 비상이 발령됐다.
광주사태가 났을 때는 신문·방송이 연일 보도하고 군인의 외출을 중지시킨 가운데 판문읍 근처에서는 야간이면 「탱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정일의 역할- 북괴의 김일성은 그가 쥐고 있던 권한의 대부분을 그의 후계자로 굳혀진 아들 김정일에게 넘겨주었다.
최근 북괴 내부의 말단기관에는 김일성의 지시는 20%에 지나지 않고 김정일의 지시가 80%를 차지한다. 북괴노동당 조직담당비서 겸 사상담당비서인 그가 노동당일뿐 아니라 경제·사회·군사분야까지 권한을 완전 장악, 김일성의 대리인 행세를 하고있다.
그 예로 『김정일 친필과업이오』, 『김정일 말씀이오』 라는 지시가 말단기관까지 내려지면 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관철시켜야 한다. 최근 북괴는 김정일 우상화를 위해「김정일 덕성(덕성)실기대회」를 벌이고 김의 지시관철을 위한 「학술경연대회」 를 북한 전역에서 벌이고 있다.
또 각 기관이나 가정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이 나란히 걸리고, 유치원 어린이들까지도 밥먹을 때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다음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선생님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해야할 정도로 북괴는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의 우상화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서해에서 생포된 북괴무장간첩 김광현(40) 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천연색 사진이 나란히 인쇄된 수첩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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