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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후세대의 안보관|"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월남의 비극 통해 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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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족상잔(동족상잔)의 처절함을 말로만 전해 들어온 전후세대들-.
그날의 비극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서른 살 미만의 이들 젊은 세대는 전후에 밀려들어온 서구의 물질문명과 자유분방한 사회질서 속에서 성장했다.
그들의 부모가 정든 땅을 등지고 피난길에서 하루하루의 생존을 염려하며 발버둥치던 뼈저린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고있는 반면 이들 전후세대는 고소득·고소비의 경제적 풍요와 청바지·통「기타」 문화를 즐기며 오늘을 살고있다.
이들 전후세대는 어느덧 우리사회의 앞날을 맡은 30대의 일꾼으로 변했고 또 그들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전후세대를 이끌 「오피니언·리더」의 위치가 되었다.
비록 포성은 멎어있지만 엄연히 남북이 갈라져 전쟁재발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후세대는 민족의 대 비극이었던 6·25를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가 알아본다.

<6·25의 정의>
10대·20대·30대 모두가 『우리민족사상 가장 엄청난 비극』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며 왜 일어났느냐에 대해서는 세대간에 또는 개인사이에 의견의 차이를 나타냈다.
정학균군(20·서울대)은 『6·25는 국제적으로 미소 힘의 대결의 산물이며 국내적으로는 권력에만 눈이 어두웠던 당시 지도자들의 민족통일의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 책임은 『권력장악에 혈안이 됐던 지도자들과 이념분쟁에 급급했던 미소 강대국들에 있다는 것』이다.
김연저양(23·숙명여대)은 『8·15 해방이 우리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후 동서진영의 사상대립이 불행히도 6·25로 우리 나라에서 열전화했다』며 『그 1차적 책임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적화야욕에 있다』고 했다.
월남가족인 임문성씨(27·서울 논현동 30의 79)는 『김일성의 허무맹랑한 적화통일야욕이 빚은 비극이니 만큼 그 책임은 북괴가 져야한다』고 했고 송형량씨(24·고대대학원생)는 『동서진영의 「이데올로기」 분쟁으로 빚어진 비극』이며 그 책임은 『약소국가를 언제라도 희생시키려는 강대국들과 국제정치에 대해 판단착오를 일으켰던 국내 정치인들에 있다』고 했다. 또 『강력한 지도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죽이는 전쟁이 일어났다』(김한덕·27·공무원)는 의견도 있었다.
이들은 부모와 선배·스승을 통해 6·25를 들었으며 국민학교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민족비극의 역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구전보다는 「매스컴」·참고서적·반공서적을 통해 하나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전쟁재발을 막기 위한 자세>
우리 민족사에 또 다시 6·25가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만큼 휴전선을 따라 감도는 긴장을 전후세대들은 잘 알고있었다.
특히 군복무를 마친 세대들은 누구보다도 남·북 대립의 긴장도를 느끼고 있으며 전전세대 못지 않게 정신무장은 더욱 철저했다.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했던 공무원 김한덕씨는 『전후세대는 젊다는 것만을 내세우지 않고 확고한 국가관과 철학을 갖고있는 한 제2의 6·25는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구로공단 한국「필름」에 근무하는 조덕화씨(24·여)는 『스스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한다』며 『사회혼란은 결국 북괴의 재침야욕을 도와주는 행위』라고 했다.
직장인으로 활동하고있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사고의 범위를 비슷하게 함께 하고 있는 반면 학생층의 생각은 조금은 달랐다.
박현숙양(21·서울여대)은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반공정신을 강화하고 국제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에의 기대>
실제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아보지 못한 세대들이지만 최근의 월남·「캄보디아」·「아프가니스탄」사태 등을 통해 무력적화통일이 북괴의 신조임을 깨닫고 자신들의 세대에서는 조국통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엄기선양(19·서울 하왕십리 2동 14)은 『평화통일이 우리세대에 이뤄지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싸움 없이 우리끼리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연희양(숙대)도 『땅은 통일이 되더라도 30년 동안 굳어진 이북 젊은이들의 사상의 벽을 쉽게 허물기 어려울 터이므로 사상적 통일까지 더 긴 세월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형근씨(고대대학원생)도 동서양 진영의 냉전체제가 엄존하는 한 우리의 통일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한편으론 남북대화에 기대를 거는 젊은이도 있다. 정학균군은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이 되야 한다는 사실만은 누구나의 가슴속에 새겨져있다. 꾸준한 남북대화로 서로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고 했다.

<안보관>
오늘의 젊은 세대는 누구에 못지 않게 국가관·안보관이 투철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표현의 방법이 기성세대들과 차이가 있을 뿐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명제를 잊고 사는 젊은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연희양은 젊은이들의 의사표현을 사회혼란의 요인으로 생각하거나 철없는 말로 보는 경향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김양은 간첩선을 격침하고 침투간첩을 사살했을 때 후방을 지켜주는 군에 박수와 감사를 보내고 신뢰를 느끼며 월남과 「캄보디아」의 비극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전율을 느끼는 젊은이라고 했다. 내 가정·우리의 민주체제·우리의 자유가 침해당할 때 총칼을 들지 않을 젊은이가 어디 있겠느냐고 힘주었다.
조덕화양은 『정치가들은 사명감을 갖고 진정한 애국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국민적 단합을 기대할 수 있다』며 국가 지도자들의 자세를 강조했다.
월남가족 임문성씨도 『안보에 있어 자주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며 외국에의 의존이나 더 나아가 미국 등의 내정간섭 등은 우리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성세대의 평가>
경희대 부총장 김점곤 박사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보지도 겪지도 못했던 6·25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데 마음 든든하다고 했다. 특히 그들 세대에서의 통일 가능성에 대해 허황된 탁상공론식 통일기대보다는 현실을 인정, 안정 속에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실리적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보에 관한 한 종전의 안보교육이 「구호교육」에 그쳤다고 지적, 이북의 진상·실상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또 안보는 안보목적 이외에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안보를 어느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경우 안보는 공신력을 잃게된다고 했다.
김교수는 한편으로 안보문제에 관해 기성 세대와 이들간에 차이가 나는 것은 상호단절과 불신 때문이라며 그들 자신 내일의 한국을 책임질 세대인 만큼 접근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윤숙씨(시인)는 『우리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비판받는 미래의 기성세대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내실을 다져야 겠다』고 했다.
재향군인회장 이맹기씨는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자유·평화·번영이 이뤄지기까지 어떤 희생이 치러어졌는가를 전후세대들은 항상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끝>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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