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

소방직 국가직 전환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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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월호 수색 지원 활동을 하고 돌아오다 헬기 추락으로 소방대원 5명이 순직한 사고를 계기로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현재는 광역자치단체 소속이다. 순직한 소방대원들의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 앞에서 소방대원들이 무릎을 꿇고 국가직 전환을 요구했다. 소방대원들은 소방직이 국가직이 아니다보니 장비·처우 등이 열악하고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정부는 소방직은 지방정부와 밀접한 것이 바람직하다며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에 반대 입장을 고수 중이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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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신속 대응 위해 전환해야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각종 대형 참사와 소방헬기 추락 사고 이후 전국의 소방공무원들이 지방직인 신분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작 주무 부처인 안전행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주요 반대 이유는 “소방은 성격상 지방사무가 적합하며, 소방의 국가직 전환은 지방자치에 역행하고, 미국과 일본도 소방은 소규모 국가직 외에 현장은 지방직이 거의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타당할까.

 소방이 지방사무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은 1990년대 이전의 상황 인식에 머무르고 있는 논리다. 소방을 단순히 각 지역에 소재한 건축물의 안전 관리와 화재 진압을 하는 정도의 행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사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소방환경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뀌었다. 상전벽해 수준이다. 2014년 현재 소방행정의 주요 대상은 지역에 고정된 건축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라도 이동할 수 있는 ‘국민’에 대한 ‘안전’개념으로 전환됐다.

 소방의 주요 업무는 더 이상 화재 진압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구조·구급·생활안전 서비스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 최근 소방조직의 연간 화재 출동 건수는 평균 4만 5000여 건이다. 이는 전체 소방 출동 건수의 5%에 지나지 않는 수치다. 나머지 95%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 서비스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지방자치학회의 연구 결과를 봐도 확연히 나타난다. 1991년의 경우 소방사무 중 지방사무의 비중이 무려 63.5%였다. 하지만 2012년 자료를 보면 소방사무 중 지방사무의 비중은 겨우 25.0%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국가사무 48.5%, 국가 및 지방의 공동사무가 26.5%에 달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소방사무는 더 이상 지방사무로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소방 조직이 국가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재난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해 3월 경북 포항의 대형 산불이 대표적 예다.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경북소방본부는 인근의 경남·울산소방본부에 소방헬기를 요청했지만 두 소방본부 모두 관할 지역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유로 지원을 거절했다. 결국 화마가 커져 사망 1명, 부상 26명의 인명 피해와 주택 111채, 임야 79㏊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안전행정부가 계속 “소방의 지방직”을 주장한다면 이는 국민 안전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국가안전처가 신설되지만 실제로 안전처에서 근무하는 건 1%의 국가직 소방공무원뿐이다. 나머지 99%의 지방직 소방공무원들은 여전히 시·도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이 이뤄져도 이중, 삼중의 소방 조직 지휘구조는 변함이 없게 된다. 이런 구조하에서 소방관들에게 어떻게 일사불란한 대응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소방의 국가직 전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일본 등 해외 사례를 논거로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 등의 사례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외국의 경우 소방은 주로 화재 진압 업무만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소방은 재난 대응 및 화재 진압 이외에 인명구조, 구급, 생활안전, 특수재난 및 의료상담 등 임무가 매우 광범위하다. 제도의 배경은 간과한 채 ‘선진국의 사례’라고 그대로 모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소방의 국가직 전환에 따른 비용 문제도 사실 그리 크지 않다. 국비나 지방비 모두 결국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보통교부세 중 총액 인건비와 지역자원시설세를 국세로 전환해 소방예산으로 활용할 경우 소방의 국가직 전환에 추가 소요되는 예산은 4000억원 정도다. ‘국가직 전환’ 요구는 소방관들의 ‘밥그릇 타령’이 아니다. 국가직 전환으로 ‘컨트롤타워의 일원화’를 실현해 재난 현장에서의 일사불란한 대응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전 국민이 하루 빨리 거주하는 곳과 관계없이 생명과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는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소방직은 지방 특성 강한 사무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소방직 공무원들의 잇따른 순직으로 온 국민이 가슴 아픈 요즘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방공무원들이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방직에만 초점을 맞출 상황이 아니다. 정부조직 편성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지켜야 할 때다. 소방직 전환 같은 행정조직의 개편 및 재구조화는 정부가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이념의 구현에 보다 적합한 체제로 조직구조를 바꾸는 것을 이른다. 이는 행정이 국가발전 및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보다 잘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관리체계와 의식, 행태를 갖추는 데 초점이 있다. 국가직과 지방직을 나누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전문성 ▶현지성 ▶업무 빈도 수 ▶민간시장 가능성 여부 등 네 가지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특정 업무를 중앙정부, 지방정부, 민간시장 중 어디에서 담당할지 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방조직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자. 1970년부터 국가와 지방 체제로 이원화돼 있던 소방직은 92년 현행과 같은 광역행정체계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각 광역자치단체에 소방본부가 만들어지고, 그 산하에 소방서가 설치됐다. 현재와 같은 체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합당하다고 본다.

 우선 소방서 업무 관할이 국가가 아닌 시·도에 있다는 점이다. 소방 업무를 지방이 담당하는 건 소방 업무가 원자력 관리 등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기보다는 중단위 정도의 전문성을 가진다. 따라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일본 등도 모두 지방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광역지자체도 아닌, 기초지자체의 사무로 편제돼 있다.

 둘째는 소방업무만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공무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소방력 배치는 인구와 관할면적을 기준으로 한다. 소방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을 도모하기 위하여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인근 시·군·구를 포함한 지역을 포함하여 설치할 수 있다. 상기 기준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단지, 공업단지, 주택단지, 문화관광단지 개발 등에 따라 대형화재의 위험이 있거나 소방수요가 급증하여 특별한 소방 대책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지역마다 소방서를 설치할 수 있다. 소방 업무는 매우 빈번하게 발생할 뿐만 아니라 현장 대응까지 5~10분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네 가지 기준 중 현지성이 큰 업무라는 점에서 지방직에 더 가깝다.

 셋째, 소방공무원의 일상의 예방적 활동과 대응 활동이 자치단체와 협력 없이는 실효성이 적다는 점이다. 소방 활동은 화재 진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이 매우 중요한 데, 이들 시설물 인허가 사무 모두가 기초자치단체의 소관업무인 것이다.

 넷째, 소방직 공무원이 실제로 처리하는 직무를 분석해 보더라도 지방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선출직 단체장들은 소방공무원에게 소방 활동과는 본질이 다른 업무처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유실견 처리는 사실상 소방직의 소관업무에 들어와 있다. 또 잠긴 문 따주기, 자치단체의 행사 동원 등으로 인해 본연의 직무 상당 부분을 훼손당하고 있다.

 ‘119 소방서비스’가 자치단체별로 재정력의 차이로 인하여 편차가 심하다는 점을 들어 국가직을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2007년 이후 총액인건비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소방직이 일반직에 비해 홀대를 받고 장비예산에서도 자치단체 재정력에 따라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시행했던 ‘소방특별교부금’이 부활하면서 이런 문제점에 어느 정도 대처할 여건은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 행정 환경에서는 소방의 지방직 유지가 적절하다. 다만 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보완은 분명 필요하다. 행정조직 개편은 학문적 원칙과 행정 내부과정만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세력의 선호·지지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기준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소방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기반을 구축해주어야 함은 물론 설득과 양보 등 정치 과정도 중시해야 한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