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시계수리 박사' 기능대회 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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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匠人) 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16일부터 22일까지 전국 16개 시.도에서 열리는 지방기능경기대회에 93세의 할아버지가 출전해 손주뻘의 젊은이들과 경쟁한다. 충남지방경기대회 시계수리 부문에 출전하는 이원삼씨.

그의 시계수리 경력은 무려 75년으로 업계에서는 '박사님'으로 통한다. 1910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막노동과 자전거 수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에게 당시만해도 시계수리공들은 소위 '화이트 칼라'로 보였다.

"깔끔해 보이더라고요.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게 편하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무작정 일본어판 수리책을 사서 독학을 했죠. 6개월 만에 시계수리공으로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24세 되던 34년에는 함경북도 청진으로 진출했다. 공업도시였던 청진에서 배우면 시계업계의 일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6년 뒤에는 전세계의 시계를 모두 만져 보고싶다며 중국 만주로 건너갔다.

해방이 되면서 귀국, 49년 서울 충무로에 터를 잡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1년 만에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 자유시장에서 점포를 연 뒤에야 안정된 생활이 가능했다. 요즘도 이 가게를 찾으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일거리가 거의 없죠. 디지털시계인가 뭔가 하는 게 나온 뒤 더 그런 것 같아요. 수리를 부탁하는 시계들은 대부분 망가질대로 망가진 시계들이죠. 하지만 그것들 고치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평생을 시계와 함께 한 그이기에 생활은 시계처럼 정확하다. 오전 9시에 경기도 성남의 집을 나와 10시30분에 시계점 문을 열고 오후 6시까지 꼬박 시계만 들여다본다.

어느덧 그의 명성은 전국에 퍼져 지방의 시계수리업소들에선 자신들이 고치지 못하는 물건을 李씨에게 보내오곤 한다. 이번 기능경기대회에도 "기능인의 자존심을 보여달라"는 업계 후배들의 등쌀에 떼밀다시피해 참가하게 된 것이다.

글=김기찬,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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