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심어본 "내 고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무심코 나무 밑을 지나다가도 이름 모를 들풀에 끌리어 발길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거기 주저앉아 버린다. 그냥 밟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자잘한 풀꽃이 내 맘을 사로잡는 것은 참으로 윈초적이고도 뿌리깊은 애착 때문이다. 간밤에 내린 비가 도랑을 이루어 졸졸졸 소리를 내며 나무숲을 헤치며 흐르고있다.
유년기를 농촌에서 보냈던 내 기억의 밑바닥에는 정원 정서가 그득 깔려있어서 공해에 오염되어가는 도시의 일각에서도 자연에 접촉하기를 갈망해 왔다.
밝은 햇빛을 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물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 그것이 존재와 삶의 바람이며 꿈이었다. 지극히 작다면 작은 이 소망은 그러나 너무나도 절실하고도 간절한 것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세상이 변하고 불안해 갈수록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맹이 하나 새 한 마리에 대해서도 깊이 젖어드는 그리움과 애착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성향은 불치의 병석에서 더욱 심화되는 듯 하였고 나는 이러한 잔잔한 소망과 기쁨 속에서 어쩌면 근원적인 생명의 환희를 만난 듯 싶다.
까닭없이 잎이 말라가는 나무 잎을 손질해주고 그늘을 좋아하는 물꽃을 이리저리 옮겨주며 생명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기도의 숨결이 이르는 곳마다에 있고 눈 닿는 어디에나 있으며 나는 이 짧다는 수유(수유)의 인생을 길고 영원하게 사는 느낌으로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지낸다.
더 높고 큰 것, 더 굉장한 것이 필요없을 만큼 작고 작은 풀꽃 향기에 취하며 작고 적은 나의 바람을 응시한다.
하다보면 이루어지는 것.
사랑하다 보면 쌓이는 보람.
진실로 저 유년기의 나물바구니에 넘나들던 아지랭이 같은 꿈의 다리, 그러므로 평생을 두고 그 무엇에도 빼앗기지 앓으려고 발버둥치듯 완강히 지켜온 것이 있다면 아기의 고사리 손을 닮은 동심과 고향집 샘물을 채운 물동이를 맒은 청렴한 생활의 「리듬」.
시간은 흘러갔지만 떠날줄 모르는 안정의 자세로 햇빛처럼, 공기처럼 목숨과 더불어 머문다.
지역개발이다, 건설공사다로 주위에는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들어서고 한길에는 소음과 먼지가 일고 있지만 아직은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가꾸어 얻은 나의 자연 속에서 밀림의 숨결을 듣고있다.
시공을 초월한 심령의 자유로운 삶의 순간, 하루하루의 영위이기도 하다.
산채의 왕이라는 두릅나물도 뜰에서, 돌나물김치·쑥국도 뜰에서 솎은 것으로 구기자·질경이도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뜯어먹는 소박한 생활은 유년기의 소꿉놀이의 연장이다.
잣나무 그늘에서 나의 발을 멈추게 한 풀꽃은 무릇이라는 약초다. 올 봄에 이 무릇을 여기저기서 모아서 무릇밭을 만들었는데 그 뿌리를 먹기 위해서 보다도 마치 물망초를 닮은 자잘한 보라꽃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꽈리·봉선화·분꽃 등도 보기 드물어져서 어린이들은 교과서에서 이름만 보았다고 좋아들 하여 망각되고 잃어져가고 있는 들풀 하나 하나가 장미나 백합 따위의 호화로운 꽃들에 앞서 오히려 보존되어야 하리라는 주장도 되새겨본다.
시골 토박이 여인들이 오히려 나물을 캔다고 우리집 뜰에 와서 바구니를 채우는 광경은 고맙고 흐뭇하기만 하다. 무슨 재주로 우리 같은 가난한 문인이 남에게 베풀 것이 있을 수 있을까만 다만 소꿉놀이 같은 생활이 빚은 혜택으로 동네 아낙들에게 나물을 뜯게할 수 있는 고마움을 누릴 수 있으니 초여름 아침 한때 한낮이 영원처럼 안정을 실어다 준다.
한 줌의 흙에서도, 한 잔의 물에서도 자연과 생명을 만끽할 수 있는 생명미의 은택이 널리 골고루 나누어졌으면-.
임옥인<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