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WB 미국 의결권 줄여야 세계 금융질서 정상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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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호 12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왼쪽)와 재닛 옐런 미국 Fed 의장이 지난 2일 워싱턴에 있는 IMF 본부에서 만나 저금리정책 등을 놓고 환담하고 있다. [AP=뉴시스]

브레턴우즈 체제는 지난 70년 동안 세계화를 이끌었다. 그간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은 14배, 무역 규모는 377배나 성장했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달러 공급량을 늘림으로써 화폐의 가치 저장 기능이 떨어졌고 세계 금융시장은 불안해졌다. 지난 70년 동안 달러 통화량은 61.8배, 금값은 35.8배나 폭등했다. 국제사회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면 무역이 활성화되다가 미국의 국제수지가 나빠지면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에서 50여 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미국이 테이퍼링(tapering)으로 유동성을 줄이면 신흥국 자본시장이 큰 충격을 받아왔다. 기축통화 발권 국가의 이익과 세계의 공익은 상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러한 브레턴우즈 체제의 모순을 극복해 글로벌 금융 불안 요인을 없애고 세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금융질서의 새로운 통치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70주년 ‘브레턴우즈 체제’ 한계 극복하려면

먼저 브레턴우즈 체제가 낳은 두 기구,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운영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들 기구는 선진국 투기자본이 신흥국 자본시장을 부실화해 핵심 자산을 헐값에 매입한 뒤 비싸게 되팔아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운영돼 왔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의결권을 정상화해야 한다. IMF와 WB의 주요 의사결정은 회원국들의 85% 이상 찬성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미국의 투표권이 16.8%나 돼 미국 동의 없이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어느 나라도 자국 이익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거부권을 금지 해야 한다. 현재 투표권은 GDP 50%, 국제무역 규모 30%, 경제 변동성 15%, 외환보유액 5%를 반영해 결정된다. 이를 국제무역 규모와 외환보유액을 각각 50%씩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각국의 경제력과 세계화 정도를 공정하게 반영하면서 의결권도 정상화할 수 있다. 이 방식대로라면 미국(16.8%→7.9%), 프랑스(4.3%→2.8%), 영국(4.3%→2.6%)의 비중이 낮아지고 현실보다 낮게 반영된 중국 등의 비중은 높일 수 있다.

둘째,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을 조정해야 한다. SDR은 IMF 가맹국에 출자액의 비율에 따라 배분된 대체 통화다. 국제수지 적자가 심해진 국가가 SDR을 외국의 통화 당국에 넘기면 필요한 외화를 받을 수 있다. SDR 역시 국제무역 규모와 외환보유액을 각각 50%씩 반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다 반영된 미국(41.9%), 유럽연합(37.5%), 영국(11.3%), 일본(9.3%)의 비중을 줄이고 그간 배제됐던 다른 국가들의 비중을 높일 수 있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이 줄고 세계 통화를 공정하면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셋째, SDR을 세계 화폐(가칭 Globa)로 유통시켜야 한다. 세계 정부가 구축되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먼저 G20이 주축이 돼 세계중앙은행(WCB)을 설립해야 한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는 실물경제가 포화한 상태에서 화폐 부문만 급팽창해 불균형이 심화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므로 세계 경제성장률과 적정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해 현행 통화량(5조2000억 달러)의 5% 수준인 2600억Globa를 매년 공급해야 한다. 이것을 전 세계 극빈 계층의 취로사업에 우선 지원하고, 난민 정착지역 조성과 유엔 상비군의 운영 예산으로 이용하면 효과적으로 실물경제로 확대시킬 수 있다.

넷째, 진정한 자유무역을 달성해 세계 각국의 상호의존도를 극대화해야 한다. GATT(1944년) 이래 끊임없이 다자간 무역협상이 추진됐고, WTO(1995년)가 출범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 결과 두 나라 간 쌍무협정이 활발해졌고 최근엔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주변국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무역을 증대시킬 수 없다. 세계 모든 국가의 무역장벽을 일시에 없애는 세계자유무역협정(WORFTA)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할 일도 많다. 오늘날 극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패권 다툼과 한·중·일 갈등은 가뜩이나 침체된 지역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경제력과 국방력이 이들보다 현저하게 약한 한국은 자칫 충돌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한국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특정국에만 편승할 게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이들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아시아 통합을 주도해야 한다. 세계 경제가 유럽·아시아·미국의 3극(極) 체제로 분화한 가운데 지역 통화가 없는 아시아만 외국 투기자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무역거래 상대국에 위안화 결제를 요구하며 기축통화에 도전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통해 미국과 일본이 주도했던 아시아 지역 내 국제금융 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의 AIIB 참여를 압박하는 반면에 미국은 제동을 걸면서 한국은 운신하기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다.

이렇게 중국이 돌출행동을 하는 것도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투표권이 왜곡된 데서 비롯한다. ADB에서 일본이 15.7%, 미국이 1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의 지분율은 6.5%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ADB 자본금(1620억 달러)을 두 배로 유상증자하고, 역내 자본 기여국의 역할이 커지도록 지분율을 재배정할 필요가 있다. 먼저 차용국과 역외국들의 지분은 줄이고 중국과 일본 각각 24%, 미국 16%, 한국 12%, 나머지 국가들 24%로 지분율을 재배정해야 한다. 또한 ADB의 설립 목적에 맞게 미국을 포함한 역외국가의 지분율은 상한을 두어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차입금을 청산하는 차용국들은 유상증자에 참여시키되 5년마다 경제 현실에 맞게 지분을 재배정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중국이 경제 현실에 맞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AIIB 설립으로 야기될 미국·일본과의 충돌도 피할 수 있다.

치앙마이 합의(CMI)는 출범 당시 중·일의 팽팽한 대결로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한국의 분담률(16%)을 파격적으로 늘려 중국(32%)과 일본(32%)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암묵적으로 맡겼다. 이것이 곧 CMI 정신이다. 한국은 이에 입각해 과거사에 집착하지 말고 ADB 내에서도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는 동시에 아시아의 공동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한·중·일 3국의 역내무역은 이미 전체 무역의 38.7%를 차지한다.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출범할 때의 역내무역 비중인 29%보다도 높다. 그러므로 아시아도 우선 아시아경제공동체(AEC)를 설립해 역내무역 비중을 증대시키고, 아시아연합(AU)과 아시아중앙은행(ACB)을 만들어 아시아지역통화인 Aon(가칭)을 발행해야 할 것이다. Aon을 발행하면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무역 갈등의 요인이 되는 환율 변동을 제거할 수 있으므로 역내무역 비중을 70% 이상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이처럼 아시아 통합을 주도해 세계 평화와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것만이 강대국들의 각축전 속에서 한국이 생존하는 길이다.



주명건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제학과를 졸업(1969년)하고, 매사추세츠대에서 경영경제학 박사(1978년)를 받았다.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세종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는 『경제학원론』 『The New Asia in Global Perspective』 『경제학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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