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히치코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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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팬」을 가지고 있던 영화감독 「앨프리드·히치코크」가 작고했다 한다. 향년 80세.
그는「서스펜스」와 공포의 세계를 가장 완벽한 영상의 예술로 승화시킨 희대의 명감독이었다.
그것은 그를 악의「에피큐리언」으로 평가받게 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는 1899년8월13일의 「런던」이다. 5세때 어머니는 한 통의 편지를 붙여서 나를 경찰에 보냈다.
경찰에서 그것을 읽자 5분인지 10분 동안 독사에 가둬 놓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나쁜 아이는 이렇게 된단다」 그러나 나는 내가 뭣을 저질렀는지를 몰랐다』-.
이렇게 「히치코크」가 회고한 적이 있다. 이 때부터 그는 「공포」에 사로 잡혔던 모양이다.
「히치코크」영화의「공포」는 다른 「할리우드」 영화의 「드릴러」물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조용한 평범한 시민에게 일상적인, 그만에 박은 생활 속에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의혹과 공포의 그늘이 투입된다.
『단애』의 신부, 『북북서로 진로들 잡아라』의 광고시대업자, 『나는 고백한다』의 신부, 『토패즈』의 외교관….
그들은 모두 전혀 뜻하지 않던 어느 순간 우연히 부조리한 일에 말려든다.
그게 너무나도 우연한 일이기에 관객은 모두 자기 일처럼 여긴다. 그러니까 『새』와 같은 신비스럽고 황당무계한 상황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새에 쫓기는 배우들의 공포는 바로 관객의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꼭「카프카」의 세계를 더듬는 것과도 같다.
『「히치코크」의 영상엔 항상 흥분이 충만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미라든가 순수성에 대하여 던지는 모욕을 그가 두려울 만한 명민성을 가지고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히치코크」를 「카프카」「도스토예프스키」「포」와 같은 불안의 예술가의 범주에서 분류시켜야 한다….
이들 불안의 예술가들은 물론 우리가 사는 것을 도와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산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미 곤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랑스와·트뤼포」는 「히치코크」를 평하고 있다.
그러나「히치코크」의 공포를 관객이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영상 속에 은근히 흐르는「유모」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에서나 그는 자기 얼굴을 반드시 집어넣는다. 『구명정』에서도 「보트」의 선저에 깔린 낡은 신문 속에 자기 사진을 넣었다.
「히치코크」영상의 「서스펜스」는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과거형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악몽은 한없이 계속된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오늘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만도 같다.
「히치코크」가 죽어도 그가 그린 공포를 우리가 벗어날 길은 없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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