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대 유물 안 나왔다고 『기자조선』부인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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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2일자(일부지방13일)중앙 일보에 실린 김정배 교수(고려대)의 글 (중산국 왕릉의 유물만으로 기자조선 실재 단정은 성급)을 읽고 놀라지 않을 수 없어 김교수에게 반문하고자 한다.
첫째, 기자가 동래하여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사료들은 문헌 비판에서 신빙성이 결여되었다고 하였는데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가.
은말의 현인인 기자와 기자조선의 기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이 현재로서는 없고 「조선」이란 말이 고유 지명이 아닌바 에야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에 북지나 요서·요동 등에 세운 나라도 있을 수 있어서 그것도 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나 한인들이 한족의 긍지를 뿌리뽑기 위해서 기자조선의 기자를 근거도 없이 한인으로 조작하여 그들이 한반도 안에서 한족을 지배했다고 하거나, 기자는 사대 문화 사상의 조작물 일 뿐이라고 억지를 부렸는데 그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해방 후의 오늘까지도 일부 학자들이 고수함은 이해하기 힘들다.
둘째, 고대사에 대한 기록이 엉성하고 고고학적인 뒷받침이 한반도 안에 없다고 해서 고대의 기록을 신화니 사대의 조작물이니 하여 무시해 버리는 것이 과연 과학적인 태도일까.
고고학적 유물은 생활 환경이 달라지면 바뀌기 마련이며 선주 민족이 있었거나 주위에 보다 문화가 발달한 민족이 있었을 적에는 더욱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변질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은대의 유물들이 이 땅에서 출토되지 않아서 기자조선의 성립 근거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은 자그마한 부인의 한 이유는 될 수 있지만 기자조선을 전적으로 부인할 만한 이유는 못 된다.
더우기 기자 조선의 후예들이 한반도 안에 이동해 온 것이 수백년 후의 일이라면 그간의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으로 하여 한반도 안에 은대의 유물에 상응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도리어 당연할 수도 있다.
셋째, 기자 조선에 관한 사료를 완벽하게 조사 연구하였는가 묻고 싶다. 『삼국유사』 고조선조 말기에 적혀 있는 고려본고죽국주이봉기자위조선을 바르게 이해한 사학자가 있었는가. 윗 기록의 고죽국=고려의 「고려」를 이병찬 박사도 고구려를 뜻한다고 하였는데 필자도 고죽을「고구려」의 이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여러 논문에서 고구려가 몽고계임을 비교언어학적 고찰로 입증해 왔는데 여기서도 「고=고」는 〔Ko〕의 표기이고 「구려=죽」은 〔Kuli〕의 표기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몽
고어에서 죽·필를 gulusu라 고하며 「통구스」어에서 Kulhu(필), 만주·「터어키」어에서 Kiliz, 이씨조선에서  이라고 함께 뜻하던 말이다.
따라서 고죽을「고굴리」(KoKuli)라고 읽을 수 있다. 곧 고죽은 고구려의 이기라고 볼 수 있고 기자 조선은 고구려인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준이 익산에 세웠다는 한때문에 마한· 신한·변한이란 호칭이 생기게 되었는데 여기의 마· 신· 변도 baru(서) jun(동) biyan(중앙)의 몽고어 표기로 추정될 수 있어서 기자나 기준과 관련이 있는 고유명사가 모두 몽고계어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지난해 이형영씨가 밝힌 요령성 대몰하 부근에서 출토된 「기후」명의 솥과 「고죽」이란 명문의 제기 및 이번에 전한 천진시 무청현에서 나온 『중산국 선우왕릉」의 「기선상출우은기자지후상」라는 비문으로 말미암아 「기자조선」 이라는 명문은 없지만 은나라의 후예인 기후 (기자) 의 후손이 중산국을 세웠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중산」은 공교롭게도 몽고어로 「gog oro」(중앙) 「agula」(산)라고 하였을 것인데 여기서「고고로」(gogoro)는 「고구려」와 흡사한 음이기 때문에 선우궁산국·기후고죽국 및 기자조선은 모두 고구려족임이 분명하고 은의 후신인 선우중산국이 고구려족이라면 은도 같은 민족의 나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선우중산국·기후고죽국부 기자조선의 상호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동일 민족의 이동으로, 선후해서 생겨난 나라들이라고 믿어진다. 아마 기자조선은 맨 나중에 한반도에 세워진 기후고죽국의 후신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산국이나 대준하 부근의 기후고죽국을 한민족사와 관련이 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끝으로 고대사를 연구하는 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고대 문헌에 나오는 자료가정적으로 모순되는 것일 경우에는 묵살하여 버려도 좋겠으나 고문헌이 신화적인 표현을 하였다는 이유로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사료에서 송두리째 빼버린다거나 또는 사료가 너무 단편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다거나, 고고학적인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그 사료를 묵살하여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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