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희생 정신 이어받아 「민주」실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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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 YWCA 대학생 협의회와 한국 기독 학생회 총 연맹 (KSCF)이 공동으로 주최한「4·19」20주년 기념 강연회가 18일 하오6시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복활과 4월 혁명』이라는 주제로 지학순 주교와 서울대 백낙청 교수, 고대생 간상만군(행정과 4년)이 연사로 나온 이날 강연회는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양심범 구속자 가족 등 1천여 명이 참석, 기독교 회관 강당 안팎을 빽빽하게 메웠고 강단 위에까지 청중이 앉아 그 어느 때보다 열띤 성황을 이뤘다.
지학순 주교는 『4·19 혁명은 기독교적 희생 정신의 실현이었다』고 말하면서 지금 새 시대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4·19의 이 희생적 정신이 뚜렷하게 발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9 당시 학생들이 목숨을 내걸고 독재와 싸운 것은 곧 국민을 위한 자기희생이라고 지적한 지 주교는, 특히 오늘 같은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올바른 양심이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이러한 희생 정신으로 무장돼 넓게 퍼져야 국민이 바라는 민주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권력에 참여한 사람과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생존권을 놓고 싸워야 하는 후진 국적 상황 하에서 과연 어떤 편에 서 있는가가 양심의 문제. 4·19때「데모」에 앞장 선 대학생이 그 뒷날 자신이 투쟁했던 「부의」의 편에 섰다면 이 나라는 잘 될 수 없다고 지 주교는 지적했다. 기독교인·지식인「엘리트」들이『남은 죽어도 나만 살면 된다』는 무관심, 탄압 자의 위치에서 나와 양심으로 돌아와야만 과거의 불의가 고개 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특히 젊은 배운 층이 각성, 진정 어떤 것이 문제다운 문제인가를 캐고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힘을 길러 4·19 희생정신으로 헤쳐 나가는 것. 지 주교는 오늘의 상황에선『자기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4·19」의 순수한 희생정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된다고 그 뜻을 붙였다.
백낙청 박사는 『4·19의 민족사적 의의』를 강연했다. 그는「4·19」를『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고, 그러나 지난 20년을 지나오면서 그것이 완성의 단계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 박사는 「4·19」를 「미완의 혁명」으로 보는 것은 ①4·19 발생 때와 지금의 당면 목표 사이에 뚜렷하게 연속성을 갖고 있고 ②역사의 흐름이 그 당시부터 오늘까지 근본으로 뒤바뀔 필요가 있다」는 상황이며 ③이를 바로 잡으려는 전 사회적 힘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는 점을 들어 설명했다.
4·19당시 학생· 시민들이 부르짖었던 「학원 자유」 「기본권」「공명선거」등 당면 목표가 지금도 되풀이 요구되고 있는데『과연 자유나 개헌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역사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백 박사는 한 국민이 8·15 이전부터 갈망해 왔던 기본 염원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통일된 민주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비록 이승만 박사를 비롯한 몇몇이 광복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이라 해도 해방 이후 과정에서 식민지 청산의 자주 운영엔 실패했고 통일 염원도「북진」을 주장할 경도로 과격만 했지 현실성이 없어 오히려 그 반대로 철저히 배격하는 결과를 빚었다. 결국 자유당 정권은 국민의 기본 염원을 들어주지 못한 정통성을 잃은 정권이었기 때문에 「4·19」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분석한 백 박사는『4·19는 이승만 시대에 대한 전 민족의 전면적 부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4·19」의 배경과 또 그 이후의 진전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면 4·19는 단순한 학생들만의 순수한 움직임에서 나가 민중의 생활상과 연결되는, 그리하여 민족의 기본적 요구를 달성하기 위한 혁명적 전환의 시발이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한 국민의 기본적 요구는 60년대, 70년대를 지나오며 겉으로 해결하려는 구호나 능률적 장치로 억압하려는 물리적 힘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러나 그 요구 자체를 근본적으로 들어 주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작년 10·26 사태가 설명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따라서 4·19이래「통일된 민주국가」를 향한 국민적 염원의 그 목표가 지난20년 동안 꾸준하게 발전되고 충족 돼 오지 않을 수 없었던 당연한 결론이라는 설명이다.
국민 저변의 흐름이 지난 정권의 방침과 서로 부딪힘으로, 비록 국민 고난이 심했기는 하지만 그럼으로 해서 민중의 역량이 꾸준히 강성하고 의식이 높아지고 그 흐름이 점점 넓게 확산 돼 왔으며 통일의 염원이「유신」으로도 막을 수 없게끔 그 동한 학생·지식인·종교인 등이 분단 시대에의 거부 반응을 전개해 왔다고 그는 평가했다.
『4·19의 민족사적 의의는 바로 우리 민중이 주체가 되는 통일된 민주국가의 성립을 향한 투쟁이었다는 데에 있다.』백 박사는 그것이 지금도 완성의 단계로 더 가까워진다고, 그 목표를 향한 더 넓은 노력을 강조했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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