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뉴델리」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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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헌안공고 기간이 끝난지 한달이나 지나도록 자체내 내분으로 자유당이 국회상정을 못하고있자 민국당을 비롯한 야당진영은 쾌재를 부르며 뒷짐을 지고있는 상태였다.
이박사가 단합을 호소했지만 불과 한두명만 반대해도 자유당은 일의 성사를 장담할수없는 형편이라 초조할수 밖에 없었다.
자유당은 드디어 화살을 바깔으로 돌려 자체결속을 기하려했다. 자유당이 배후를 조종했다는 구체적 증거는 없었으나 공교롭게도 이때「뉴델리」사건이 일어났다. 10월27일 민국당전선전부장 함상훈이 돌연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내용인즉 53년6월2일당시 국회의장이던 신익희의원이 이박사의 특사로 「엘리자베드」영국여왕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인도수도 「뉴델리」에 내려 「6·25」 때 월북한 조소앙과 밀회를 갖고 비공산·비자본주의의 제3세력을 규합, 남북협상을 추진해 한국의 중립화를 획책했다는 것이다.
함은 신익희가「뉴델리」에서 조소앙과 만난것은 틀림없는 사실일뿐 아니라 54년3월 조소앙이 보낸 밀사 오경심을 광학문 모술집에서 만나 제3세력 형성을 계속 꾀했고 그 세력이 민국당 내부에까지 침투해 있다고 주장했다.
「뉴델리」회담설이 나오자 정국은 발칵 뒤집혔고 민국당은 존망의 위기에 서게됐다. 민국당은 즉각 상무회의를 열어 사실여부를 규명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함상훈을 제명처분했다.
함의 성명은 국회본회의로 비화됐다. 자유당은 국회본희의에서 김종신의원(마산) 으로 하여금 『「뉴델리」남북협상 밀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것』을 긴급동의로 요청했다. 국회는 이에따라 내무·법무장관을 국회에 출석시켜 증언을 듣기로했다.
먼저 자유당측이『함씨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허위로 그런 성명을 발표했을리 만무하니 진부를 철저히 규명해야한다』며 뭔가 의혹이 있다는 쪽으로 몰고갔다.
그러자 민국당쪽에서 사직당국이 함상훈을 심문해 본적이 있느냐, 있으면 증거를 대라고 따졌는데 백한성내무와 조용정법무장관은 『오경심이 종로서에서 취조를 받던중 자살한 일이 있었으나 밀회설에 관한 사실 여부는 알수없다』 『함씨 성명을 보고 그를 심문하려 했으나 소재가 불명하여 지금 수색중에 있다』고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렇게되자 신익희의장이 신상발언을 요구했는데 발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대통령으로부터 사전에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영국정부로부터 초청장이 왔으니갔다오라고해서 떠났다. 이박사는 영국에 가는길에「6·25」때 우리나라를 원조해준 우방들을 방문하여 사의를 표하고 앞으로의 유대를 공고히 하라고 말했다.
5월18일 서울을 출발해 미국·「캐나다」를 거쳐 6월2일 영국여왕 대관식에 참례하였고 6월10일부터는「스칸디나비아」3국을 순방했고 「룩셈부르크」·「네덜란드」·「프랑스」·서독을 방문했고 「싱가포르」·「인도네시아」등을 거쳐 9월18일 귀국했다.
인도에는 비행기가「가솔린」을 넣는동안 30분간 체류했다. 당시 비행기가「뉴델리」공항에 도착한 것은 하오11시 반깨이었다. 그때 날씨는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동행한 김동성의원과 비행기를 내리면서「네루」수상을 이미 「파키스탄」에서 만났고 날씨가 더운데다 시간도 없으니「뉴넬리」방문은 그만 두기로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다시 탑승해「방콕」으로 향했다. 일본에 도착해 내가 조소양과 만났다는「루머」가 서울에 떠돌고 있다는것을 알았다.』
신익희의 신상발언을 듣고 야당은 역습에 나섰다.
김상돈의원(민국) 은 『함상훈이 신익희를 「모델」로 쓴 각본을 갖고 전국민이 관람하는 가운데 선량들이 배우노릇을 하고있는 셈이다』고 전제, 『다섯번이나 대·소선거에 떨어져 정상이 아닌 함상훈에게 금전을 살포해 알아들었다면 항우장사라도 그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고 배후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관동지진때 조선인이 일본인을 학살했다는 조작사건과 함씨건이 같다고 말했다.
또 김달호의원(무·상주갑) 은 『신익희가 조소앙과 만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오경심과 만났다고 해서 남북협상파가 된다는 법도없으며 변영태총리는「제네바」에서「몰로토프」와남일을 만나도 문제가 안됐는데 신빙성도 없는「뉴델리」회담설을 국회가 떠들이유가 뭣 때문에 있느냐』고 다졌다.
사태가 이렇게되자 조순의원(자·곡성)이 함상훈을 불러 증언을 듣자고 동의를 제출했는데 나는 함만 부를것이 아니라 신익희의장과 동행한 김동성의원도 불러야한다는 동의를 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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