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사서오입개헌|개헌공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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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의원에 대한 50만환 융자사건이 확대되어 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됐다.
당시 나 말고도 민국당소속의원이 5명이나 더 이 돈을 받았었다.
경찰출신인 최천의원(통영)이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해왔다.
나는 『염려말라』며 조병옥선생께 갔다. 유석은 내가 돈을 받았다고 고백하자 크게 꾸짖고 『모든 걸 털어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빌라』고 충고했다.
나는 스스로 민국당의 속죄양이 되기로 결심했다. 발언대로 나간 나는 『선거빚에 집을 쫓겨나고 세탁이 마르지 않아 웃저고리를 못 입고 나온 형편이어서 50만환을 받았으나 양심은 허락치 않으니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지만 두고두고 후회가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신익희·조병왕선생이 『천만부당하나 실정이 비참하고 또한 행차뒤의 나팔이니 국회결의에 의한 전체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하고 대부받은 의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선에서 끝내자』고 해 문제는 가까스로 수습됐다.
54년은 소설『자유부인』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 상징하듯 전후의 혼란과 부패속에 우리사회가 도덕관·가치관에서 격심한 마찰을 겪던 시대였다.
때문에 국회의원간에도 전통선비정신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질숭배사상에 휩쓸려 얼토당토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당은 이 같은 사회분위기를 십분 이용했는데 내가 자칫 미숙해 걸려든것을 섕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거워진다.
이런 와중에 자유당은 개헌안 서명작업을 계속했는데 국회제출 하루를 앞둔 9월5일 현재 자유당의원 가운데서 민관식(동대문) 김두한(종로을) 두 의원만이 서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무소속의윈중에 횡령피의 사건으로 공판을 앞두고있던 윤재욱의원(영등포갑)이 찬성날인했다.
민관식의원은 당시 30대의 초선의원으로 자유당 안에서 직언을 잘하기로 소문났었는데 이정재가 중심이된 원외자유당이 참기 어려운 협박을 가했던 것으로 안다.
견디다못한 민관식의원이 맨마지막으로 서명함으로써 자유당은 9월6일 1백36명의 이름으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숫자는 개헌에 필요한 재적 3분의2 선에서 1명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이박사는 개헌안이 제출되던날 진해별장에 머무르고 있었다.
정운갑총무처장이 개정안의 공고를 위해 재가를 받으러 진해에 갔더니 이박사는 아무 말없이 「사인」을 했다고 들었다.
개헌안은 9월8일 국무회의결을 거쳐 당일로 공고됐다. 30일간의 공고기간이 지나면 국회에 상정되어 토론과 표결에 들어가도록「스캐줄」이 정해져 있었다.
이제 개헌안은 여야간에 성명전의 잉태로 바뀌었다. 자유당은 개헌공고와 더블어 「계몽」을 명목으로 전국적인 선전활동을 벌였다. 개헌안에 서명한 국회의원 앞으로 1백만환씩의 「오리발」이 전달됐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야당은 선전비를 염출할수가 없어 조직적인 반대운동은 못하고 윤제구·신도성·김상돈·이철승의원등이 각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공청회와 지상토론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반대운동을 대신했다.
특히 민국당은 자유당과 빈번한 성명전을 했는데 9월20일 장문의 성명을 발표, 『미증유의 국난에 직면하고 있는 이때에 국난타개와는 이렇다할 관련도 없는 개헌문제를 들고나와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당은 이재학총무의 이름으로 여러차례 민국당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자유당은 황성수·임철호·진승국등을 연사로 내세워 시공관에서 개헌찬성 연설대회를 열었으나 냉담한 반응을 받았고, 반면 언론계가 주최하는 공청회에서 민국당의 소선규·신도성등이 펴는 반대주장은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공청회를 통해 민심의 소재를 알아차린 도시출신 자유당의원들이 하나둘 개헌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이들 반발세력들은 우선 원외자유당에 화살을 돌렸다. 그「메뉴」가 양담배사건이었다. 양담배사건은 전매청이 압수한 양담배를 일선장병 위문용으로 자유당에 3만갑을 배부해 주었는데 이것을 자유당간부들이 장병들에게 주지 않고 시중에 불법 유출해 사리를 채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유당소장 「그룹」은 경제4부장관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고 30여명의 의원이 탈당할 움직임을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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