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많은 팁 받을 수 있는 말 한마디는 무엇일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5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선물한 영화 ‘우정어린 설득(Friendly Persuasion·1956)’의 포스터.

권‘력’과 영향‘력’은 모두 다 ‘힘(力·력)’의 한 형태다. 내 뜻대로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게 힘이다. 완전한 독재·전체주의 사회(예컨대 선임 병사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었던 30여 년 전 대한민국 군대사회)에서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착착 움직인다. 연성(軟性·soft) 독재사회(예컨대 일당독재 국가이지만 지도자들이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오늘날의 중국)만 해도 영향력의 중요성이 한층 고조된다. 모든 민주적인 사회나 조직(소위 ‘가장’이 마누라·자식 눈치 보는)에서는 권력보다는 영향력을 행사할 일이 더 많다.

 영향력이란 무엇인가. 어떤 단어·개념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지름길은 그와 비슷한 말을 살펴보는 데 있다. 영향력과 가장 근접한 말은 설득이다. 설득력이 곧 영향력인 것이다.

『영향력-설득의 심리학』의 한글판(왼쪽)과 영문판 표지.

 영향력·설득의 문제로 고민하는 독자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영향력-설득의 심리학』(1984)이다. 이 책은 판매인(salespeople) 등 뭔가를 팔아야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심리학 이론, 역사 속의 사례, 저자의 실제 체험이 잘 버무려진 책이다.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신문광고에 나오는 세일즈 훈련 과정에 족족 참가했다. 현장에서 ‘권력≒영향력≒설득력’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웨이터로도 일했다. 웨이터들이 손님 기질을 어떻게 파악하고 ‘말 한마디’로 보다 많은 팁을 얻어내는지 관찰한 것이다.

 『영향력』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을 6대 원리·원칙으로 정리했다. 이 여섯 가지는 인류의 유전자와 문화에 깊이 각인돼 있는 것들이다. 이들 원리·원칙은 ‘원시적’이기 때문에 강력하다. 인류의 생존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수만 년, 수천 년 동안 형성된 것들이지만 자칫 족쇄나 함정이 될 수 있다. 『영향력』을 한번 뒤집으면 내게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지혜가 나온다. 남에게 영향력이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남들의 영향력 ‘꼼수’를 간파해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영향력』 중에서 첫째 가는 원칙은 호혜성(互惠性·reciprocity)이다. 호혜성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공평하게 주고 받는 것’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다(인류 역사상 거의 최초로 기록된 호혜성은 구약 성경의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어진 계약이다. 하느님이 내건 조건은 할례·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얻는 것은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들에게 퍼부을 강 같은 축복이었다).

 호혜성의 원리는 “받는 것은 빚지는 것이요, 주는 것은 저축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은 받기만 좋아하고 주는 것은 싫어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인 사람이 더 많다는 게 심리학의 결론이다. 무료 샘플 화장품이건, 한마디 칭찬이건, ‘하찮은’ 선물이건, 식사 한 끼를 대접받았건 크고 작은 뭔가를 받은 사람은 그 순간부터 은혜·호의를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사람은 ‘얌체’나 ‘은혜를 모르는 놈’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두 번째 원리는 일관성이다. 어떤 이념, 주장, 조직에 일단 한번 몸담게 돼 엮이게 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 사람이다. 여당 후보건, 야당 후보건 투표장에서 일단 한쪽을 찍은 다음에는 그 한쪽을 계속 지지하게 된다. ‘말을 바꿨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 싫은 것이다. 인간은 의리를 매우 중시한다. 아주 사소한 편들기가 결국엔 ‘내 목숨 다 바쳐 편들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아주 사소한 그 무엇으로 그를 묶어야 한다.

 세 번째 원리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동류 압력(peer pressure)’이다. 사람은 사회가 공인한 그 무엇, 내 또래 사람들이 모두 행하고 인정하는 그것에 약하다. 특히 혼란스러운 위기 상황에서는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게 된다. 회식에서 다수가 짜장면을 시키면 나도 짜장면을 시키게 된다. 한국 문화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네 번째 원리는 권위다. 사람은 ‘권위주의적인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권위 있는’ 전문가의 말 한마디에 약하다. 다섯 번째 원리는 호감(liking)이다. 내가 잘 알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여간해선 ‘싫어’ ‘아니야’라고 말하기 힘들다. 치알디니 교수에 따르면 요즘에는 SNS의 발전으로 ‘동류 압력’이 ‘전문가의 권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여섯 번째 원리는 희소성이다. 희소성은 ‘상실의 두려움’을 낳는다. 사람은 뭔가를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에 약하다. 예컨대 남북통일로 얻게 되는 것(동북아 강국이 되는 것, 통일의 희열 등)보다는 잃게 되는 것(북한 주민들이 대거 남한으로 내려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소득이 줄어드는 것 등)을 두려워할 가능성이 크다.

Robert Cialdini 로버트 치알디니 (1945~)

영향력·설득을 다루는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애리조나주립대 명예 석좌교수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향력』은 20개국 언어 이상으로 번역돼 수백 만 부가 팔렸다. 미국에서 200만 부 이상 팔렸다.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