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세계|내외제약 스스로 극복하는 자세를…|각대학신문 편집장들이 말하는 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7일부터 12일까지는 신문주간-. 봄과 함께 선듯펴진 대학안의 언론활생화현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가? 대학언론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학원안의 언론활동, 개선돼 가고 있는 문제점들, 그리고 일반신문에 대해 던지고 싶은「말들」을 들어본다.
김용태=여기 모인 사람들이 대학언론인인만큼 대학신문이야기를 우선해보죠. 정치권력의 언론통제가 심했던 70년대의 대학언론상황과 10·26사태후의 변모를 들어본다면 고대신문의 경우도 10·26이전엔 제도상의 모순을 안고 있었습니다. 학생처장의 내부검열재·주간의 최종편집권 장악등이 그것이죠.
학생기자들은 외부와의 투쟁이전에 주간과의 견해차이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10·26이후 내부제도의 완화로 어느정도의 자율권은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주간은 신문사의 경영과 제정을 맡고 편집의 권한은 학생기자들이 전적으로 요리할 수 있도록 정관을 수정했으니까요.
전려왕=이대학보의 경우는 전부터 학생기자들의 자율권이 상당히 존중되어 왔읍니다. 3년전부터 사설도 학생기자와 교수가 번갈아가면서 집필했고요.
그러나 외부의 압력이 다른곳과 마찬가지였어요. 10·26이후 많이 달라졌죠. 그러나 검열이 있는 한, 숨통은 되었으나 숨은 마음대로 쉬지못하는 상태라고 할까요….
신명직=대학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 같은때 연세춘추는 75년이후 10·26사태이전까지 학생처에 귀속돼 있었지만 특별히 자체검열같은것을 받진 않았읍니다. 자치내의 민주화는 어느정도 유지되어 온 편인데 「배포금지」등 외부의 부당한 간섭이 문제가 되었지요. 작년에만 6회의 배포금지가 있었는데「농촌의 지붕개량사업이 눈가림식」이란 기사가 말썽이 되었읍니다.
김광채=서울대학은 지난해봄 학생기자들이 총사퇴하는 일까지 있었읍니다. 주간이 학생편집장에게 사퇴를 종용, 학생기자들이 단합하여 모두 사퇴한거죠.
그래서 몇개월간 학생아닌 전임기자 혼자서 신문을 만들어왔는데 이제 일단은 정상화된셈입니다.
김광=그럼 일간신문과는 또다른 의미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신문이 나아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것일까요? 신『지금까지 통제되어왔던 「서클」지·단대지·학희지등이 부활되고 활발히 운영되어 대학신문의 두가지기능(「아카대미시즘」과 「저널리즘」중 「아카데미시즘」의 상당부분을 맡아주어야 할 것압니다. 대학신문에 실리는 30장짜리 논문이 어느정도의 학문적 깊이를 찾고있는지 사실 회의적이거든요.
전=그러나 대학신문이 일정한 수준의 고정독자를 갖고 있는것을 생각하면「아카데미시즘」의 기능이 반드시 부정적이라곤 볼수 없습니다. 30장짜리 논문이라도 학내의 학문적활성화나 지식인 움직임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요? 김용=대학신문의 많은 부분이 논문수록을 위해 할애되고 있다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봐요. 학술논문은 기타 학술지가 소화하고 대학신문은 시사성을 띤 논문을 실어야 합니다.
한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대학신문의 책임과 위치를 선정할때 염두에 두어야할 것이 학교당국의 홍보지 성격과 학생의사 반영이라는 학생신문의 성격이 혼재해 있는 대학신문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계속되는 한 학생이 주인이라는 학생기자들과 반대입장의 대학당국이 부딪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은 대학신문발전의 큰 방해요소로 남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학기관지와 학생신문을 분리, 2원화시켜 학생들로 하여금 취사선택하게 하는 것이죠.
김광=서울대학은 유신이후 10·26까지의「대학신문」을 「상황신문」이라 불러 왔읍니다. 이제 대학신문은 학생들의 진정한 의견발표의장으로서 그 고유임무를 되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전=우리가 입을 열면 신문에 대한 비관이 추상같죠…(웃음) 이야기를 일반신문으로 옮겨보죠.
김광…「언론의 자유와 책임」에서의「자유」는 「무엇으로부터」가 아닌「무엇을 위한」자유가 되어야 할 것 같군요. 기자가 직업인인것은 어쩔수 없으나 그래도 좀더 지사적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랄때가 있읍니다.
신=신문주간이 4월에 있는 것은 상당히 암시적인 데가 있읍니다. 그것이 독립신문 창간일에서 우연히 4월이 되었더라도 4월이 주는 의미(새로운 것을 위한 시도)를 살려 민중을 이끌수 있는 새 신문이 되어야겠읍니다.
김룡=우리나라 신문은 주어지는 것에만 급급할 뿐 스스로 찻는다는 자세가 부족한것 같아요.
전=이제 우리신문도 확산해야 할 때가 된것 같아요.「확산」이란 붓수를 얘기하는 양적팽창이 아니라 시각의 확산입니다. 대한민국 전체와 각 지역사회로 관점을 넓혀 분단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민족의 진정한「리더」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김룡=지금 한참 진통을 겪고있는 대학문제에 대해서도 이들 대학의 상당수가 구정권과 야합하여 비정상적인 성장과 치부를 해왔는데 신문이 이러한 그간의 사정,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할 진봉의 불씨 같은것은 외면하고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생겨나는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만 확대해서 보도하는 것은 고쳐줘야했어요.
김광=사실자체를 왜곡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발생원인을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도해야 되지 않겠읍니까? 일부 측면보도만을 보고 일반에서는 대학이 자율화되었다니까「참별짓 다한다」는 식의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신=이번 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신문이 대학생을 보는 눈이 상당히 비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문에서 대학생을 다룬 기사를 보면 대부분 과장되고 왜곡된것이 많거든요. 물론 국외자의 입장에서는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파악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일부」라는 것이「센세이셔널리즘」을 전제로 한 선택이 대부분이에요.
전=언론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는데 그 역사동안 신문이 독자에게 의무감을 갖고 만든적이 있었나 반문하고 싶어요.
그간 언론이 겪어왔던 무수한 탄압과 통제, 그 상황을 이해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는가. 의식자체부터 위축되어 과천부터 진척은 정말 없었는가 하는 겁니다.
신=한국언론도 이제 60년의 역사를 쌓아왔다고 볼수 있으나 그동안 신문이 독립성을 유지했던 기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일제하의 동아 등의 활동은 상당부분 일제의 문화정책을 수행하는데 바쳐져 피지배층의 육성이 반영되지 못했고 그후 미군정하에서도 마찬가지었죠.
5·16이후 10·26까지의 언론 역시 특정정권의 유지를 위해 통제된 것을 생각하면 결국 언론이 제목소리를 냈던 시기는 4·19후 5·16까지의 1년 남짓한 기간밖에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광=독립신문이 나왔을 당시의 신문은 동포개화의 뜻을 가지고 지사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오늘의 신문은 기업적인「미디어」산업으로 변모했읍니다.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느정도의 변모는 불가피하겠지만…. 그리고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는 커다란 사회변혁이 없는 한 완전히 사라질수는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안에서 기자들이 얼마만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느냐가 아닐까요? <정리=이덕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