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 유흥수 내정 … 아베 부친과 폭탄주 마신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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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흥수(77·사진) 한·일 친선협회 이사장을 주일본대사에 내정했다고 여권 핵심관계자가 22일 전했다. 주일본대사직은 이병기 전 대사가 국가정보원장에 지명되면서 지난달 15일 이후 공석이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정부에 유 이사장에 대한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요청한 상태로 안다”고 밝혔다. 주재국 임명동의를 받기까지는 보통 1개월여 안팎이 걸려 유 내정자에 대한 정식 임명은 8월 중순이 될 전망이다.

 경남 합천 출신의 유 내정자는 1985년 민정당 소속으로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14·15·16대까지 4선을 하는 동안 한·일 의원연맹 간사장,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등을 거친 대표적 일본통이다.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까지 일본에 살다가 6·25 전쟁 직전 부모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와 일본어에도 능통하다.

 경남중·경기고를 졸업한 유 내정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서울대 법대 16회 동기동창이다. 경남고 출신의 김기춘 실장과 함께 경남중·고 동문회 회원이고, 한·일 친선협회에선 이사장(유 내정자)과 부회장(김 실장)으로 활동하며 지난해 1월 일본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1962년 고등고시 행정과(14회)에 합격해 경찰에 투신한 뒤엔 치안본부장까지 올랐다. 관선 충남지사와 교통부 차관도 역임했다.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도 교토대(京都大)에서 1년 연수를 하는 등 일본과는 꾸준히 인연을 맺어왔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일본 외상과 초선 의원 시절 부산 동래의 별장에서 함께 폭탄주를 나눠 마실 만큼 가까웠다고 한다. 1991년 5월 아베 전 외상이 사망했을 때 일본에 문상을 가서 아들 아베를 위로하기도 했고, 2006년 한·일 친선협회 총회가 일본에서 열렸을 때도 아베 총리를 예방했다.

 유 내정자는 본지 통화에서 “한·일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여러 면에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두 나라가 지금 냉랭한 관계인데, 정상적인 관계를 복원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여권 일부에선 1937년생인 유 내정자가 고령이라는 이유로 대사에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 내정자는 “나이가 많고 은퇴한 사람에게 일을 하라고 할 때는 그 만큼 한·일 관계의 심각성을 정부가 알고 있다는 것”이라며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등 일본 원로들과 다 친분이 있기 때문에 (임명 후) 바로 예방해 지혜를 빌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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