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의 대국적인 자제 화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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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정국이 갈수록 착추해지고 있다.
짙은 안개로 앞을 내다 볼 수 없다하여「안개정국」이니「시계제로정국」이니 하는 말로 요즘 정계 기상이 표현되고있다.
정풍 충격에 이어 공화당은 이후락 의원의 폭탄적인 발언으로 빚어진 이른바「역풍」에 휘몰려 4의원에게 탈당권유 조치를 취하고 당직자들이 전원사표를 제출하는 등 그야말로 눈앞도 헤아리기 어려운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연달아 폭력사태가 있었던 신민당도 그 사후처리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에 첨예한 대립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김대중씨는 김영삼·김종필씨에 이어 3번째로 대통령 출마의사를 시사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차례 있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대정부 비판 발언에 대해 대통령 대변인이「유감」을 표명하는 담화문을 발표해 정부·신민당간도 갑자기 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개혁 주도를 둘러싼 국회·정부간의 대립되는 입장이 풀릴듯한 조그만 기미조차 없는 터에 정치발전을 주도해야할 국회·정부·공화·신민당 등이 헌법과는 직접 관련 없는 문제로 이처럼 혼미를 거듭하는 것은 아무래도 선후를 가리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고, 또 이런 상태가 쉽게 풀릴 전망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답답하다. 특히 양당이 겪고있는 문제는 일조에 끝나거나 한 두 차례의 조치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는데 더 고민이 있는 것 같다.
공화당의 경우, 정풍·역풍의 주역들을 출당시킴으로써 표면상 평온을 찾을는지 모르지만, 정풍·역풍이 제기한 논리와 문제점은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떠나게 한다고 하여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고민이 있다.
신민당 역시 폭력사태의 진상이 어떻든 대통령후보를 둘러싼 김영삼·김대중씨간의 조기 경쟁이 계속되는 한 당내잡음을 피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또 이 전환기를 원만히 관리하여 새 민주정부를 조속한 기간 안에 탄생시켜야할 정부로서도 좀더 허심탄회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국회와 정당의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모든 정치세력의 관심의 표적이 되고있는 개헌문제에 관해 국회안의 대강이 다 밝혀지도록 정부의 개헌심의위는 발족 후 이제 겨우 두 번째 모임을 갖고 그 운영방침을 토의키로 했다니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원만한 민주발전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는 무엇보다도 안정과 화합과 자제가 필요하다는데 이론이 없어왔다. 그러나 지금 관련 제당사자들이 가고있는 방향이 과연 안정과 화합과 자제인가. 그 보다는 분열과 대립의 양상만이 노정되고 말과는 달리 대국보다는 사익을 앞세우고, 국리민복보다는 당파를 우선시키고 있지나 않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이 단계에 와서 유신복고가 오거나 과정기간이 장기화되는 사태는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안·혼미·분열의 양상이 계속된다면, 또는 정국의 시계가 밝아지지 않는다면 이 누구도 원치 않는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커진다.
신당의 출현을 양당은 다같이 싫어하겠지만 양당의 사정이 혼미하면 할수록 신당의 소지도 커진다고 봐야한다.
이런 사정을 정치인이라고 모를리 없고 따라서 현 단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도 물론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공화·신민당의 집안문제에 처방을 제시하려 하거나 정부에 대해 구체적인 시국대책을 건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항상 유의하여 그에 따른다는 자세를 확립할 것과, 대국이 보전돼야 그 안에서 경쟁이든 뭣이든 가능하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만 당부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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