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후락 파동」…여진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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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장의원들의 정풍과 그 대상자의 한사람인 이후락 의원의 역풍으로 거센 난기류가 몰아닥친 공화당은 속결 수습 방침을 세우고 26일 당기위원회(하오2시)·당무회의(하오3시)를 1시간 간격으로 소집해 이 의원과 임호 의원을 전격 징계했다. 이후락·임호 두 의원의 탈당권유로 사실상 제명 조치를 해 공화당은 한차례 제명 파동의 후유증을 겪게될 것으로 보인다.

<제명 정족수 문제로 고민>
정풍파 의원들은 당이 징계하더라도 일단 따르기로 했으나 징계「이유」에 대해서는 불복할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정풍파를 징계한다면 오늘의 사태를 초래케 한 현 당직자들의 책임문제도 필연코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정풍파 의원들의 주장이다. 이·임 의원에 대한 사실상「제명」으로 숙당작업의 폭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에 따라 당은 또 한 차례의 진통을 불가피하게 겪을 것 같다.
○…이후락·임호 의원을 제명할 것이냐 탈당권유로 할 것인가를 최종 결정한 것은 25일 당무회의에 이어 열린 당직자회의에서였다.
당직자회의는 일단 두 의원을 제명키로 결정하고 즉각 김용호 총무가 의원총회를 소집토록 했으나 뒤에 탈당권유로 바뀌었다.
김 총무는 하오 6시부터 소속의원들의 소재파악에 나서는 한편 26일 자정까지 연락만 있으면 당사에 나올 수 있도록 대기하라고 준비시켰는데 26일 현재 81명중 13명이 징계 당사자 또는 외유로 부재중이며 68명이 참석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지역구 활동중인 6명의 의원도 즉시 상경토록 지시.
김 총무는『당헌상 투표를 기명으로 할 것인지 무기명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규정은 없으나 만인이 납득할 수 있는 만국공통의 방식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애초에 이후락·임호 두 의원을 제명시킨다는 방침을 정한 후 그 절차를 연구(?) 한끝에 제명효과는 거두되 직접 최고형에 속하는「제명」조치를 피하고「탈당권유」라는 편법을 쓰는 방안을 택하기로 했다. 지난 73년「2·27」국회의원선거 후유증으로 강상욱·강기천 두 의원을 제명할 때 의총을 거치지 않고 당기위원회와 당무회의결의만으로 처리했던 실례가 있다고 당사무국에서는 간단한 제명 방식을 제시했다.

<이후락씨는 제명에 반발>
그러나 정당법이나 당헌조항을 무시하고 당무회의 결정만으로 제명조치를 함 경우 당사자들이 제명 무효 가처분 신청이라도 법원에 내면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분석까지 했다는 것.
○…25일의 당무회의에 앞서 이른 아침 이병희 당부의장이 용산동에 있는 이 의원 자택을 갔으나 못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의장의 방문 목적은 이 의원의 김종필 총재 공격진의를 파악하기로 한 당직자회의 결정에 따른 것. 이 부의장은 이 의원이 기자 회견을 하기 전 전화 통화를 하려다 실패하고 이 의원 자택을 방문했으나 결국 문전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한때 사후면담이 된 양 이씨 요담에서 이후락 의원은 자신의 기자회견에 대해『당이 정풍 운동을 미끼로 제명하려는데 기분 나빠서였다』고 설명하고 당의 제명 방향에 노골적으로 반발했다는 얘기가 나돌았으나 낭설임이 밝혀졌다.
당직자들은 이 의원의「3·24」발언에 이어 또다시 제2탄을 쏠지 모른다는 가상을 하고있다.
○…김 총재 대신 이병희 당부의장 사회로 열린 25일 당무회의는 장장 3시간10분이나 계속돼 김 총재 취임 후 최장의「마라톤」회의를 기록했고 참석자 19명(불참 민관식 김용태 김종철 의원) 전원이 의견을 개진했다.
여느 때와 달리 4중 당무회의실에 사무국요원 두 명이 보초를 서는 등 보안에 철저를 기했으나 가끔 고성이 밖으로 흘러나와 열기를 보여줬다.
김 총재는 아침9시10분에 정상출근 했으나『내가 앉아 사회를 보면 나에 관한 얘기를 못할 것 아니냐』면서 사회를 사양하고『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서전원고를 추고하는 여유를 보였다.
당무위원들은 대부분 이후락 의원과 정통파 의원들을 다같이 집중 성토했는데 미리 막지 못한 책임론을 편 온건의견도 있었다.
이병희 부의장이 모두 한 사람씩 의견을 말하자고 요청해 길전식 부의장이 맨 먼저 얘기를 했고 마지막으로 김택수 위원장이 의견을 개진했다.『원색적인 욕설이나 강경한 비난보다는 아주 냉정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최영철 대변인이 회의 분위기를 설명했으나 대부분의 당무위원들이『당장 결론을 내리자』고 강경론을 펴「제명」조치 방향은 정해졌으나 구체적 방법은 간부들에게 위임됐다.
육인수 중앙위의장이 이 의원과 정풍파 의원을 싸잡아 비판한 초 강경 자세였고 김임식 의원이 온건론을 폈다는 얘기.
육 의장은『당을 파괴하려는 사람과 어떻게 동지애로 뭉쳐 당을 해나갈 수 있단 말인가』고 억양을 높였고 어떤 당무위원은『나가고 싶어하니 빨리 내보내 주는 것이 그 사람을 봐 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울산동향인 김임식 의원은『이 의원에 대한 제재는 반대하지 않으나 김 총재와 이 의원간의 거리를 좁혀주는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신형식·문태준 의원 등은, 당이 진작 정풍파 의원들에 대해 좀더 신경을 썼으면 이 같은「막다른」상황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는 자성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무회의가 열린 이날 당사에서는 공화당소속 상임위원장회의와 총무단 회의도 소집돼 HR파동으로 회의「러시」를 이루는 하루가 됐다.
○…김종필 총재는 26일 박찬종·오유방·정동성·변정일·김수·박용기·윤국노·홍성우의원 등 정풍파 8명과의 대화에서『정풍의 취지는 좋으나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피력하면서 한 파동을 겪은 만큼 이제 자제해 줄 것을 요망.


김 총재는『세상에는 선악이 공존하는 것이고 악을 없애려는 노력은 필요하나 한칼에 악을 쳐야 선해질 수 있다는 흑백논리는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하고 조직의 질서를 문란시킨다』며『서서히 청신한 기풍이 축적되면 내년 국민의 심판을 받을 때쯤 당이 정돈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도 부덕함을 반성하겠지만 정풍파 의원도 동료의원을 거명해 공개지탄 함으로써 생긴 물의에 책임을 느껴야하며 앞으로 다소 본인들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당론이 정해지면 따르는 미덕을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정풍파 의원들은 탈당을 요구한 이후락·김진만 의원에게는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끼나 지금 당내에 조성되어 가고있는 용퇴의 분위기와 깨끗해지려는 노력은 환영할만한 것이며 당이 어떠한 제재를 가하더라도 그「형식」은 받아들이겠지만「내용」에는 승복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당헌을 민주적으로 개정하자는 그들의 주장이 이후락 의원에 의해 엉뚱하게 이용당했다고 지적하고 그 같은 잡음을 근본적으로 일소하자면 전당대회를 조기 소집해 대의원의표에 의해 총재로 선출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들은 총재면담에 앞서 25일밤 모임을 갖고『총재가 격하게 나오더라도 예의를 갖춰 할 얘기는 다하자』는 다짐을 하고 자신들에 대한 당기위의 처분에 관계없이 정풍 운동을 계속 추진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부패방지법 제정 등 건의>
이들은 당이 그들의 당직 사퇴서를 되돌려줘도 만족할만한 정풍 성과가 있기 전에는 받지 않기로 했다.
이밖에 정풍 의원들은 당이 인사 정풍도 좋지만 부패방지법·타락선거 방지법 등 정책정풍도 아울러 펼 것을 건의했다.
○…김종필 총재는 이후락 의원을 규탄하는 당원궐기대회가 점차 확산·과격화하고 지방당원들이 떼지어 중앙당에 찾아오기 시작하자 그 같은 집단행동을 삼가 줄 것을 전국지구당에 긴급지시.
25일 하루만해도 중앙당의 청년당원 궐기대회가 열렸고 부산·대구·전주에서 이 의원 성토대회가 있었으며 충남당원 47명은 전세「버스」로 남산당사에 올라와 이 의원을 성토했다.
또 당 훈련원에서 교육중인 경기·강원·충남지역 관리장 중 20여명이 훈련원을 뛰쳐나와 당사에서 성토대회를 벌이자 김유탁 훈련원장은 이들을 설득해 되돌려보내느라 진땀.
당사무국은 각 지구당의 이 같은 움직임이 정치과열이란 부작용을 초래해 자칫 또 다른 정치변수로 등장할 것을 우려해 각 지구당에 중앙당에는 올라오지 말라는 긴급지시를 내리게된 것이라고 당 간부가 설명했다.
당 간부들 사이에서도 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결속을 새롭게 하는 것은 좋으나 이 의원의 발언에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견이 대두하고있다.
그러나 다수 당직자는 이번 파동이 김 총재와 이 의원간의 파동이 아닌 만큼 정치권외 옹벽을 허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이창기·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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