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상의「속」과「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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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어느 도에서 다수확 농민에게「증산왕」칭호와 함께 왕관을 씌워준 행사가 있었다.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면「넥타이」를 맨 신사들이 금관을 쓰고 앉아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관의 모양을 본뜬 금관이라고 한다.
다수확의 노고를 위로하고, 또 격려해 주는 행사는 좋은 일이다.
옛날에도 춘경기면 임금이 손수 소(우)에 맨 쟁기를 잡고, 사직단에 제사를 드리고, 한편 왕비는 비원 안의 초가에서 누에에 뽕잎을 주는 권농행사가 있었다. 물론 다수확을 올린 농민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런 행사들은 너무 형식에만 치우친 인상을 준다. 이번 증산왕의 경우도 왕관을 쓰고 앉은 품이 어딘지 장난스럽고,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비록 왕의 칭호를 준다고는 하지만「증산」과「금관」은 도무지 걸맞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그 행사의 뜻에 있다. 그까짓 모조품 금관이나 씌워주고 박수를 치는 것이 무슨 보람이 있을까. 차라리 경운기라도 한대씩 나누어주거나, 외국의 시범 농장이라도 견학을 시켜주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기능공돌이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받고 왔을 때도 그랬다.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가두에 악대까지 나와 요란한 환영을 하고, 식도 가졌지만 과연 이들에겐 무슨 실속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본인보다는 오히려 관객을 위한 행사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좋은 일, 보람스러운 일,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명예와 존경과 함께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아쉽다. 행사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가 더욱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고도 결국은 보람이 없으면 누군들 그런 일에 관심이나 갖겠는가.
외국에선 무슨 상장을 받으면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문의 영광으로 길이 남는다. 그 때문에 옳은 일이나 좋은 일은 그 사회의 미덕으로 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기념일도 많고, 포상도 많다. 그러나 그 수많은 포상자들이 얼마나 영예를 누리고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은 한낱 행사의 주인공들일 뿐, 자신에게 돌아가는 실속은 별로 없다. 증산왕의 경우도 어줍지 않은 왕관을 씌워주기보다는 더 뜻 있는 시상의「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 결국 그런 행사를 행사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매로는 주객이 바뀐 행사가 되고 만다.
상을 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한번 그 행사의 뜻을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비단 증산왕의 경우뿐 아니라, 모든 포상 행사들은「겉」보다는「속」이 있는 행사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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