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체제의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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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당의 「5중전회」는 유소기에 대한 사후복권과 당서기국의 부활, 문혁 잔류파의 제거 및 대자보의 금지 등 당통제의 강화를 결정했다.
이를 계기로 등소평 주도하의 중공당은 이념·정책·조직·인사의 모든 면에서 80년대 현대화노선 추진을 위한 권력의 안정기반을 한층 더 다져 놓았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유소기의 복권은 모택동 사상의 오류를 원천적으로 폭로하고 당의 기본노선을 다시 정통「마르크스-레닌」주의로 복귀시키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이점은 「5중전회」의 「코뮈니케」 자체가 유의 복권의의를 『본당의 올바른 「마르크스」 주의당임을 밝히는 것』이라 자처한데에 단적으로 나타나있다.
유소기 「스타일」의 「마르크스」주의란 이를테면 공산주의 나름의 근대국가이론이다. 당과 행정의 기능적 효율화와 합리화를 통해 경제·과학·군사 기술면의 혁신과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 취지에 따라 이번의 「5중전회」는 당 서기국 부활이란 일종의 조직경영 개념을 재도입하여 그 총수에 등직계의 호요방을 임명하고 당의 중앙집권적 통제와 행정적 기율을 강화했다. 그리고 국가행정의 면에서도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조자양으로 하여금 통할하게 함으로써 당과 행정 등 각분야의 전문화와 분업화를 도모하는 듯한 양상을 드러냈다. 당과 행정의 분업지도체제와 그러한 현대경영에 부응한 비교적 젊은 층의 전문직 기용으로 중공은 일단 「4개의 현대화」를 향한 체제정비를 굳혀나가고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체제정비에도 불구하고 중공의 이론적 입장과 현실적인 자체모순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난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등소평체제는 조직과 경제분야에서는 합리화와 현대화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정치와 권력행사의 측면에서는 대자보와 대토론의 금지 등 오히려 당내외에서의 억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이 양자간의 불일치는 「4개의 현대화」에 상당한 역기능을 과할 것이다. 현대화라는 것은 관료적 획일주의나 민간 창의성에 대한 억압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억압하에서의 중공의 「현대화」라는 것은 결국 서방측에서 인식하는 현대화-즉 삶의 질을 높이는 현대화가 아니라 「소련형 사회」로의 접근정도로 밖에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등소평체제가 최근에 와 소련을 비난함에 있어서도 「수정주의 반대」라는 말 대신에 그냥 「패권주의 반대」라는 용어만을 줄곧 사용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가능성을 은연중 감지하게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등소평 체제의 「현대화」는 결국 앞으로 동「아시아」에 또 하나의 소련 비슷한 억압적 강대국의 출현을 자기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중공의 「현대화」작업에 한몫 참여하겠다고 하는 미국과 일본 등 서방 선진국들이 과연 그런 점을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있는지 궁금한 일이다.
가상해서 중공이 정말로 그런 군사강대국이 됐다고 상정할 매, 그 중공이 자체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점해소의 한 불가피한 필요 때문에 오늘의 소련과 같은 대외 패권주의로 표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과연 어디 있겠는지, 미국 정책 집행자들의 장기적이고 신중한 대중공 처신을 당부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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