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 아름다운 이별 위해선 호스피스 병동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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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여성이 직장암 판정을 받고 국립암센터를 찾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뼈로 암세포가 전이되면서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의사는 더 이상 수술은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가족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더 이상의 연명치료로 고통받기 싫다”는 어머니에게 항암치료는 더 큰 고통을 지우는 일과 같았다. 생(生)의 마지막은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로 어머니를 모셨다. 임종까지 3주 동안 더 많이 보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서서히 이별을 준비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이진 않았어요. 다만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은 예전처럼 편안해 보였습니다.” 2년 전,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최진영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 연구원<사진>의 실제 이야기다. 그는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모든 환자에게 최선은 아니지만,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한 해 7만4000여 명이 죽고, 8000여 명은 새롭게 암환자로 등록된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새로운 삶을 얻기도 하지만, 암세포가 몸에 퍼져 회복 가능성이 없고, 기대여명이 예측될 때 ‘말기암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말기암 환자 10명 중 9명은 통보를 받고도 치료의 희망을 놓지 않고 병원에 남는다. 임종 직전까지 각종 검사와 항암치료, 중환자실 치료를 받으며 몸은 망가진다. 이러면서 일부는 병원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쫓겨나듯 병원을 전전하며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치료비는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이 된다. 최근 명지병원 암통합치유센터 개소 3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최 연구원은 “말기암 환자의 품격 있는 죽음(웰다잉·well-dying)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적극적인 항암치료 대신 통증관리를 위한 약물치료나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 암 완치가 치료의 목적이 아니다. 원예수업이나 음악·미술치료와 같은 정서 지지 프로그램과 영적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고통을 억제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 최 연구원은 “국립암센터가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한 환자에게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일반병실(32%)에 비해 환자만족도가 76%로 두 배 이상 높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은 50여 곳, 병상은 860여 개에 불과하다. 운영상 수익이 없어 민간 의료기관의 참여율이 낮기 때문이다. 간접치료가 중심인 데다 완화의료에 대한 수가도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반면에 의료진은 환자 2명당 간호사 1명, 환자 20명당 의사 1명 등 중환자실급으로 구성해야 해 인건비가 많이 든다. 프로그램 운영비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의 운영 비용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고, 미국이나 일본은 완화의료에 대한 보험수가가 정해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암진단 시점부터 ‘완화치료팀(Palliative Care Team·PCT)’을 꾸려 신체 증상이나 심리적인 부분까지 협업체제로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호스피스 병상을 1400여 개로 늘리는 한편, 수가 시범사업을 통해 병원을 지원할 방안을 찾고 있다. 국립암센터에서는 올해 말까지 전국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에 대한 병상수·의료진·프로그램 등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제공할 계획이다. 최 연구원은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모르거나, 혹은 너무 늦게 알아 선택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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