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치] 끝없는 전쟁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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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승전(勝戰)과 전쟁의 정당성은 별개 문제다. 이번 전쟁이 유엔의 승인을 얻지 못한 불법 전쟁임은 명백하다.

이라크 국민을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해방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해도 그것 역시 국제법 위반이다. 타국의 정치적 독립과 영토적 통합에 대한 무력 공격은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다.

이라크가 과연 민주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무정부 상태의 야만적 약탈과 복수뿐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미국이 그토록 강조했던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후세인은 최후까지 WMD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무죄'를 증명했다. WMD를 찾아내지 못하면 미국의 승리는 빛 바랜 것이 되고 만다.

사실 WMD는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었다. 이라크 무기사찰을 맡았던 유엔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의 한스 블릭스 위원장은 이번 전쟁은 '사전에 잘 계획된 전쟁'이며, 미국은 WMD 존재 여부에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고 폭로했다. UNMOVIC가 이라크의 WMD 보유 여부를 밝힐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으며, 미국의 목적은 오직 하나 후세인 체제를 뒤엎는 것이었다고 블릭스는 비난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두 가지다. 누가 이라크를 지배할 것인가, 이라크 다음으로 타깃이 될 나라는 어디인가다. 미국은 이라크의 장래를 3단계로 상정하고 있다. 미국 주도로 군정 실시, 임시정부 구성, 그리고 이라크 국민의 선택으로 민간정부 수립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워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이스라엘의 안보를 확실히 하며, 이라크를 미국의 중동 패권 유지의 발판으로 삼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이라크 다음으로 어떤 나라가 표적이 될 것인가는 특히 중요하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신보수주의 세력, 즉 네오컨서버티브(네오컨)는 전쟁 승리로 더욱 기세가 올랐다. 이라크는 시작일 뿐이다.

이들은 미국적 가치를 중동 전체, 나아가 세계에 '전파'한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중동의 '불량국가'인 이란.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북한도 히트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가운데 시리아는 이라크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미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는 중동을 미국식 민주주의 아이디어에 따라 재편하려는 네오컨의 '순진함'을 비판하면서 아랍권 국가들의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반감(反感)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프는 네오컨의 검증되지 않은, 광신(狂信)에 가까운 믿음이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전쟁을 통해 보다 나은 국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전체주의적 도덕관이라고 통박한다.

미국은 전쟁국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지금까지 2백번 가까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으며, 그중 상당수는 진행 중이다. 또 1950년 이래 군사비로 7조달러 이상 지출해왔다.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역사가 찰스 A 비어드는 미국의 이 같은 행동을 '영구평화를 위한 영구전쟁(Perpetual War for Perpetual Peace)'이라고 비판했다. '21세기 로마제국' 미국은 영구전쟁, 끝없는 전쟁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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