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전」의 서막 | 조용한 정지…「JP」의 지방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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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단·오물처리장도 찾아>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1일 대구를 끝으로 10일간에 걸친 지방순시를 마친데 이어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내주말부터 시도지부 결성대회 참석을 계기로 전국을 누빌 계획을 세우고 있어 81년의 「대결전」을 앞둔 서막이 올랐다.
김공화당총재는 지난 22일 춘천을 시발로 청주·대전·전주·광주·마산·부산·대구 등 8개 도시를 순방하여 지방당직자·기관장·유지급 인사를 접견하고 「당원교육」이란 이름으로 연설했다.
한 도시에서 1천명(청주)으로부터 최고 3천 여명(부산)에 이르는 약 2만 여명의 당원을 상대로 「총재와의 대화」시간을 가진 것이 특색.
40∼50여명이 참석하는 오찬과 만찬 때는 종교계·학계인사나 기관장이 초청되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 지방공단·근로장·오물처리장까지 찾아다니며 여공·하역부 근로자들과도 만났다.
전주에서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일하는 5백 여명의 청소부들에게 겨울내의를 전달했고 춘천서는 공장지대의 여공들을 찾아가 위로, 격려하고 「사인」공세를 받았다.
하여간 김총재는 그의 애칭 「JP」와 함께 정치바람을 몰고 다녔다.

<유신의 불가피성 등 역설>
○…「당원교육」을 통해 김총재는 10월 유신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공화당이 저지른 시행착오를 인정하는 한편 경제발전 등의 공적도 있음을 역설했다.
김총재는 『모든 기회와 여건이 공평한 상태에서 경쟁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공화당은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내년 선거를 「전투」라고 서슴없이 전제한 김총재는 필승을 다짐하고 독려했으며 당내 정풍운동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첫 시찰지인 춘천에서 야당에 포문을 연 김총재는 『정치인은 사막에도 꽃이 핀다고 우겨야 한다』고 「흐루시초프」가 주장했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비판했다.
『적이란 관념을 안 갖고 정치를 하겠다』고 말해 정치보복을 배격하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고 『여기도 내 조국 저기도 내 강산인데 지방색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로컬리즘」의 타파도 부르짖었다.
가는 곳마다 한가지씩 「폭탄선언」을 해서 홍보전도 벌여야 한다고 일부 당직자가 건의했지만 김총재는 『지금은 조용히 범여권의 대동단결과 내실을 기할 때』라며 거절했다는 얘기다.

<유가인상 서민에 전가>
○…정부시책에 대한 비판을 삼가온 김총재가 1일 대구의 마지막 순시에서는 부가세의 전면폐지를 포함한 전반적인 세제개혁을 들고 나온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
김총재는 『부가세제도는 현실여건을 무시하고 이상에 치우친 나머지 많은 부작용을 빚어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지적하고 세제의 소득재분배 기능 면에서도 차별성과 역진성 등의 결함을 안고 있어 사실상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부가세를 존속시킬 경우 법인과 개인기업 중 제조업·도매업에 한해 실시하되 중심세율을 현행 10%에서 7%로 인하하고 다른 업종은 영업세로 환원토록 해야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총재는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언급, 『지난번 유가인상에서 비축용분 3%가 유가에 전가된 것은 재정 아닌 소비자부담으로 석유비축을 하려는 것으로 공화당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학생들과 즉석토론도>
○…대전에서 시작된 환영「피키트」물결은 전주·광주·마산·부산 등에서 물결쳤고 환영 인파도 점점 늘었다.
『매력 있는 지도자 JP만세』『민족의 횃불아 훨훨 타라』 『새 역사의 창조자 JP만세』라는「피키트」에서부터 유행가 가사에 맞춘 『돌아왔다 부산항에 멋있는 JP』라는 것도 등장했다.
김총재가 주최한 「리셉션」장에는 도지사·경찰국장·검사장 등 그 지방기관장들은 물론 교육계·금융계·종교계·실업계 인사 등 지방유지들이 거의 다 참석해 공화당이 아직도 집권당이란 인상을 줄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에서 김총재는 제주도 감귤 밭의 혜택을 받은 운정 장학생들을 비롯한 50∼60여명의 대학생들과 즉석토론을 가졌고 어떤 데서는 학생들과의 얘기가 길어져 다음 「스케줄」을 취소한 일도 있다.
金총재의 순시에 앞서 중앙당의 선발대가 먼저 내려가 치밀한 일정을 짜는 한편 공화당 창당「멤버」가 중심이 된 은행나무 동우회가 동원돼 방계조직·친여단체들의 참여와 환영을 위한 정지작업을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전남도 순시에는 김상영, 임인채씨 등 전 의원까지 초청돼 서울서 내려갔고 유정회소속 이상익, 신철균, 박형규, 장기선, 신상철, 정병학, 송방용, 고귀남, 조병규, 이도환 의원 등이 각각 연고지순시 때 참석해 범여권의 단합을 과시했다.·
공식 일정이 들어가지 않은 공백시간이 도시마다 1, 2시간씩 있었고 아침과 저녁마다 개인시간을 약간씩 가져 이 시간에 김총재가 은밀히 만나야 할 사람을 따로 접촉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있다.

<연설솜씨 예나 다름없어>
○…이번 지방순시를 통해 건강을 과시한 것도 성과로 꼽히고 있다.
상오 6시부터 자정까지 계속된 빡빡한 일정인데다 때로는 하루 6차례(전주)에 달하는 대중연설을 해야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김총재는 지칠 줄 몰랐다.
지난 71년 대통령선거유세 이후 이 같은 강행군을 한 일이 없어 측근에서 건강문제에 퍽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부수 효과는 그의 대중연설솜씨에 이상이 없다는 점. 김총재 특유의 매력이 넘치는 연설이 종전과 변함이 없어 당 간부들은 내년 선거의 유세전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고 했다.
김총재의 이번 순시는 지방당원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큰 계기가 됐다는 것이 당 간부들의 공통된 평가이며 박찬종 의원은 『지방에 가보니 공화당 인기보다 JP의 인기가 더 높은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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