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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태풍」이지만 풍랑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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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가의 대폭 인상은 비록 예고한 태풍이었지만 환율인상을 바로 뒤잇고 있어 충격의 파장이 훨씬 깊고 넓게 퍼질 것이다. 「1·12」 조치와 직접 연계된 유가 조정은 경부가 내걸고 있는 새로운 균형화 정책, 말하자면 그동안의 퇴적된 부합리와 국내외 가격간의 왜곡, 시장기구의 불균형을 개별정책으로서가 아니라 종합적인 거시정책 수단으로 한꺼번에 해소하겠다는 정책발상이다.
그 결과로써 빚어지는 일시적인 불황, 「인플레」, 실질소득과 소비감퇴, 생활수준 저하는 긴축과 절제로 대처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유가 추가부담이 GNP의 5%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생활수준의 실질적인 저하가 불가피하며 뿌리가 깊은 「인플레」 소지를 기반부터 불식하기 위해서는 달리 정책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원균형의 새로운 구축만이 80년대의 장기안정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는 논리가 「1·12」 조치와 유가인상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경부가 찾으려는 고원균형이나 정상 시장기구의 정립은 그 시기가 매우 부적절한 시점에서 선택되었다. 무엇보다도 대내외의 불확정 요인이 너무 많다. 「1·12」 이후의 일련의 종합대책이, 지금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새로운 균형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요소들이 예측 가능해져야 한다. 세계 경기가 그렇고 무역과 통화의 전망이 보다 확실해져야 하며 더욱 중요한 원유가의 안정적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그 어느 것도 지금은 확실치 않다. 불확실한 여건 가운데서는 되도록 중요한 정책결정은 유보해 두는 것이 위험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이런 경우에는 불가피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책수단부터 취하고 가변요소가 많거나 선택가능한 정책결정은 뒤로 미루는 것이 순서다.
정부가 이 모든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뒤에 내린 결정일지 모르나 적어도 불확실 요소의 비중만큼은 국민들이 위험부담을 지게되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때 국민들은 불필요한 추가부담까지 떠맡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유가조정에서 복합단가 28.8「달러」 기준으로 인상했으나 59%의 높은 인상폭은 지나치게 물량확보에 급급한 결과로 보인다. 정부가 59%의 근거로 제시한 모든 숫자는 요컨대 원유공급의 주 「파이프」인 정유사의 이윤보장을 우선시켜 먼저 물량확보에 주력하고 그를 위해서는 기존 원유가상승 부담누적과 환율변동, 그리고 현물시장의 구입가능성과 OPEC의 추가인상까지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당면과제가 비록 물량확보에 있다하더라도 이토록 즉각적이고 대폭적으로 국내 유가를 인상하지 않도록 위험을 분산하지 못한 정책결함까지 모두 정당화 시키지는 못한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안전판을 갖추지 못했고 그것은 곧 정책을 맡은 정부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유가·전기료의 대폭 인상으로 원가압박이 높아진 거의 모든 공산품과 공공요금 70여개를 모두 현실화해줄 것으로 보여 광범한 물가파란과 충격이 뒤따를 것이다.
한국은행이 산업연관표로 분석한 바로는 석유가 10% 인상의 경우 도매물가는 직접효과 1%, 간접효과 1.6%, 합계 2.6%에 이르고 전력료 10% 인상은 직접 0.9%, 간접 0.3%로 모두 1.2%의 도매물가 파급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결국 유가 59%의 인상은 도매물가에 대해 직접영향으로 5.9%, 간접영향으로 9.44%, 모두 15.3% 이상이고, 전기료 35.9% 인상은 직접영향 3.15%, 간접영향 1.05%, 모두 4.2%의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공식발표한 도매물가 파급효과는 기름값만으로 직접효과 5.937%, 간접효과 5.8%, 합해서 11.7%, 전기료는 1%다.
결국 「에너지」가 상승만으로 최저 12.7%, 최고 19.5%의 물가파급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지난번 환율·금리 인상으로 미칠 물가영향이 이미 14%로 예측된 바 있어 이 일련의 경제조치로도 30% 도매물가 억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의 강력한 긴축과 경기후퇴로 작년말 현재 GNP의 5%에 달하는 방대한 재고가 남아있어 원가요인이 상당수준 높아져도 재고완충이 가능하고 올해도 긴축을 계속할 경우 투자·소비수요가 동시에 감축, 원가요인을 최종소비자에게 직접 모두 전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므로 물가파급은 그리 크지 않으며 28% 수준에서 억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1·12」조치 이후의 충격적인 경제조치를 감내하기에는 기업·가계의 체질이 너무 허약하고 국제수지의 천장이 너무도 낮아 정부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구축하려는 새로운 균형조차 어려워지고 그나마의 성장잠재기반마저 더욱 잠식해 버릴 우려가 매우 높다.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재정·금융긴축과 고통의 공평한 분담이 불가결한데 과연 정부가 단결된 행정력과 기민한 정책대응으로 그것을 극복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중요정책 결정과정마다 불협화와 마찰이 전해지고 있어 국민들에게는 경제충격 외에 또다른 우려를 첨가하고 있다. 환율·유가 결정과정에서 빚어진 행정부안의 마찰은 집행과정에까지 연장되어서는 안되며 그를 위해서는 보다 단결되고 기동성 있는 경제행정의 면모를 국민들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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