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흥정… 팔레비 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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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개월 째 으르렁거리던 미국과 「이란」정부가 비밀리에 화해를 모색하고있다는 것은 「워싱턴」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밴스」미 국무장관 자신이 밝혔듯이 미국은 그동안 「유엔」이나 ICJ(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이란」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10여 개가 넘는 「채널」을 통해 「이란」측과 끈질기게 막후협상을 시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지난 23일 미국과 「이란」, 그리고 「팔레비」를 보호하고 있는 「파나마」 등 세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이란」외상이 「파나마」의 「팔레비」인도 가능성을 처음 비치고 소련군의 위험을 경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나마」정부는 곧이어 「이란」측 주장보다 농도는 다르지만 「팔레비」인도절차에 관한 전문이 오갔음을 공식 확인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카터」미대통령은 이날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은 「이란」국가와 「이란」국민, 그리고 「이란」혁명에 반대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치「업저버」들은 무엇보다도 「카터」가 「이란」혁명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터」행정부 관리들은 「이란」측이 소련군의 침략위험성울 경고한 점에 주목하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소련군의 위협을 막아줄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란」의 「호메이니」 자신이 최근 소련군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미국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던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논리를 미국 측이 원용하고 있는 것은 큰 「아이러니」다.
「팔레비」의 구금 설과 관련,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개입여부다.
그동안 「팔레비」가 감기만 걸려도 법석을 떨던 미국의 관리들과 언론들이 의외로 침묵을 지키는 게 더욱 이상한 감을 주고 있다.
「호딩·카터」 미 국무성대변인은 미국의 관련가능성을 공식으로 부인하긴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중대한 움직임이 과연 미국정부의 동의 내지는 묵인 없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데에 큰 의구심을 품고 있다.
「팔레비」문제해결에 있어서 미국이 개입하거나 최소한 막후조정을 할만한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첫째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사태로 하루라도 빨리 「이란」과 화해해야할 입장에 놓여있다.
만일 소련이 「이란」마저 장악한다면 「페르시아」만 유전지대와 석유보급로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목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이란」이라는 나라자체보다도 「이란」의 석유와 「이란」이 갖고있는 「페르시아」만에서의 전략적 가치가 미국과 미국의 맹방인 서방 국들엔 「생명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둘째, 「카터」는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팔레비」문제를 조속히 해결함으로써 2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동안 「팔레비」를 뒷바라지하던 「록펠러」는 공화당이다. 지금 추세를 보면 「카터」 보다는 「케네디」와 싸우는 것이 공화당엔 편한 상대다.
따라서 「카터」입장에서 본다면 「록펠러」에게 일격을 가함으로써 정치적 「라이벌」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셋째 이와 관련해서 「카터」행정부는 최근 「이란」에 대해 두 가지의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이란」에 대한 경제봉쇄 조치를 일주일이상 연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미국인질이 석방되고 나면 「이란」에 대한 일체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파나마」와 「이란」간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뜻인 동시에 이 움직임이 어떤 결실을 맺도록 시간을 벌어준다는 「간접적인 지원사격」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만일「팔레비」를 「이란」에 돌려보낼 경우 「카터」가 얻을 수 있는 정치적 득실은 무엇일까.
물론 미국이 당장 불러들일 손실은 엄청나다. 「이란」으로 가면 처형될 것이 뻔한 「팔레비」를 본국으로 보낼 경우 「카터」외교의 간판이던 도덕성과 「인권외교」는 땅에 떨어지고 국제적 여론은 몹시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미국인 인질 50명이 살아 나오고 미·「이란」이 다시 손잡고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하는 결과를 얻는다면 「카터」가 얻을 수 있는 국내정치적 전과는 더욱 클 것이다.
어쨌든 미국이나 「이란」, 그리고 「팔레비」를 보호하는 대가로 미국의 경제지원을 기대하는 「파나마」 등 3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피차간에 「체면」을 유지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는 길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파나마」정부와 「이란」정부 간의 일련의 움직임은 사태해결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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