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정착 23년 된 보금자리 새 지주 나타나 쫓겨날 형편"|전주시 남향동 반공청년 정착농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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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는 6.25 반공청년 들입니다. 55년 전주시 ㅇ후동 1가 597 일대에 공동으로 땅을 사서 집단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최근 이곳에 지주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23년 간 살아온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형편입니다. 이 정착촌의 실태와 땅의 전매 과정 등을 취재해 주십시오.<전주시 남향 정착농원 장원섭·홍윤식·이명노>
전주 남향 정착농원은 전체부지 3천7백56평에 2백30가구 1천5백여 명의 난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 90%가 남편은 날품팔이, 부인은 행상으로 살아가는 영세민 촌이다.
이들이 6·25전란을 치르고 이 곳에 정착한 것은 23년 전. 주민 대표 장원섭(61) 이명노(49)씨 등에 따르면 57년2월26일 홍정택씨(사망)를 대표로 한 반공청년 l백여 명이 이곳 황무지 3천7백56명을 평당 구화3백50환씩에 사들여 건평 3O평 안팎의 흙벽돌 연립주택 70채를 짓고 23년 동안 살아왔다.
당시 등기부 상의 소유권자는 장병석씨였다. 그러나 장씨가 당시 나이 어린 미성년자(10세)이어서 그의 아버지 장남기씨(사망)가 친권을 행사해 아들의 명의로 돼있던 땅을 팔았다.
이들은 땅을 살 때도 어려움이 많았다. 6·25때 「유엔」군에 포로가 돼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좌익포로들과 유혈투쟁까지 벌이다 정부의 석방조치로 자유의 품에 안겼으나 맨주먹뿐이었다.
1개월 간에 걸친 날품팔이로 땅값을 마련했다.
땅을 산 뒤 정부의 정착농원 인가를 얻어 57년4월3일 당시 전주시장 안진길씨를 비롯한 기관장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갖고 집을 지어 그 해 8월 입주하여 지금까지 살아 왔다.
주민들은 매매계약서와 잔금을 치른 영수증만을 갖고 등기를 이전하지 않았다. 모두가 노동이나 날품팔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처지여서 재산을 지키는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 때만해도 계약서와 영수증만으로도 소유권 행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2중 매매 같은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투기「붐」이 한창이던 74년5월 부동산 「브로커」들이 이 농원 부락에 자주 드나들며 엉뚱한 얘기까지 나돌았다.
수상쩍게 여긴 주민들은 법원 등기부를 열람해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의 터전인 땅이 그 해(74년)4월25일자로 원지주 장병석씨(의정부시)로부터 강일중씨(서울 수유동 469의62)앞으로 넘어가 강씨 명의로 등기이전이 되어 있었다.
18년 만에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은 장씨가 2중 매매한 사실을 들어 각 계에 진정해 검찰에서도 배임혐의로 수사에 나섰으나 장씨의 주소지인 의정부지청은 장씨가 『아버지가 땅을 팔았는지 몰랐다』고 진술해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었다.
주민들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는 사이 소유권등기는 그 뒤에도 몇 다리를 넘어갔다.
77년2월28일엔 이용규씨(서울 화곡동 56의91)에게 가등기 되고 78년7월5일엔 배기원씨(충남 아산군 온양읍)에게로 가등기 됐고 79년3월28일엔 이왕분씨(서울 행당동300)에게 넘어갔으며 이씨는 이 날짜로 이를 경기은행에 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민들은 마지막 이씨에게 넘어가기 한 달 전인 79년2월27일 우선 전매라도 막아야 한다는 법조인들의 충고에 따라 이전등기 원인무효소송을 전주지법에 내 이 사건은 현재 재판에 계류돼 있다.
주민 장원섭·홍윤식(61)·유정석(43)씨 등은 이 같은 전매과정에서 주민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지주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땅을 사라』 『임대료를 내라』 『땅을 넘겨라』는 요구를 계속했고, 지난해 1월엔 집달리까지 동원돼 강제집행을 말리던 주민 2명이 폭행혐의로 구속되는 소동까지 있었다.
20여 년 전엔 시내 변두리의 불모지였던 이곳 농원부락은 시세의 확장으로 이젠 주택가 복판에 들어앉아 평당 20여 만원이 넘는 값진 땅이 됐다.
주민들은 이전등기 원인무효소송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몇 다리를 건너 이 땅을 산 사람들은 매매행위에 법률적인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맞서고있다.

<전주=이현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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