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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붙일 곳 없는 망명독재자들|냉대-암살위협 속 유랑생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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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쫒기는 독재자들은 불안하다.
53년간 2대에 걸친「이란」의「팔레비」왕조를 역사 속에 묻고 지난 1월중순 도망쳐 나와야 했던「팔레비」왕은 「뉴욕」의「코널」병원에서 42일간의 치욕스런 병상생활을 끝내고도 갈 곳을 찾지 못해 우선「텍사스」의「윌포드홀」공군병원에 의탁했었지만 다시 「파나마」로 떠나야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파나마」학생들의 반「팔레비」폭동과 그를 뒤쫓는 암살단의 위협으로 망명지「콘타도라」섬 조차 결코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대사관을 점거, 60여명의 인질을 잡아놓고「팔레비」를 산채로 「이란」에 돌려줄 것을 요구했던 「이란」의 강경파회교학생들은 「팔레비」가 미국을 떠난 후엔 다시 「파나마」측에 대해 송환을 요구하고있어 그의 운명을 점치기 어렵다.「팔레비」는 「이란」을 떠난 후 「이집트」「모로코」「바하마」로 전전하다가 지난 10월 22일 암치료를 위해「뉴욕」에 도착하기까지는「멕시코」에 은둔해있었다.
혁명직후 「팔레비」는「이란」최고혁명재판소의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전세계에 그를 암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다.
그는 또「이란」혁명정부에 의해 「뉴욕」 주대법원에 공금착복·해외도피 혐의로 7백65억「달러」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고 있다.
지금 세계에는 올해 들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이처럼 불안하게 쫓기고있는 독재자가 「팔레비」 말고도 4명이나 더 있다.
8년 동안 30여만명을 학살하고 「세기의 기인」이라 불렸던「우간다」의 「이디·아민」,중남미의 대표적인 군사독재자였던「니카라과」의 「아나스타시오·소모사」, 검은대륙의 독재 3총사의 하나였던 중앙「아프리카」의 「보카사」1세 황제 그리고 10월 중순 군사 「쿠데타」로 물러난 중남미「엘살바도르」의 「카를로스·로메로」등이 그들이다.
「이디·아민」은「우간다」수도 「캄팔라」가 「탄자니아」군과 반정부세력의 손에 떨어진 후 「우간다」북부지방으로 잠적했었다.
그 뒤 잠시 「이라크」에 나타났다가 「리비아」의 한적한 해안별장에서 쓸쓸한 연금생활을 해왔었다. 그러나 최근 「가다피」「리비아」대통령이 「아민」은 「리비아」에 없다고 밝혀 그의 맹방은 오리무중.
「아민」은 재직 시 숱한 기행과 폭정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아 어느 나라로부터도 동정을 얻지 못하고 유일한 친구인 「리비아」의 「가다피」대통령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됐었다.
군사독재로『중남미의「이디·아민」으로 불렸던「니카라과」의 「소모사」대통령은 좌익「게릴라」에 쫓겨 지난 7월17일 그의 호화별장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로 망명을 떠났다. 그러나 미국도 불안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고 다시 짐을 챙겨 지금은 남미의 독재국가 「파라과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
「카터」행정부는「소모사」의 신변보장을 약속했지만 미국과 「니카라과」사이에는 범죄인인도협정이 체결되어있어 「소모사」로서는 언제 어떻게 「니카라과」에 송환 당할지 모르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지난 9월20일 「리비아」를 방문중 전대통령「다코」의 무혈「쿠데타」로 실각한 중앙 「아프리카」의 「보카사」황제는 「프랑스」에 망명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고 「코트디브와르」로 갔으나 연금되고 말았다.
「보카사」는 「파리」의「드골」공항과 「오틀리」공항에서는 착륙조차 못하고「에브르」공군기지에 유류공급을 위해 잠시 기착허락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코트디브와르」에 겨우 망명처를 얻었지만 「보카사」에 국가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내린 중앙 「아프리카」 신정부가 「코트디브와르」에 그의 인도를 요청하고 있어「보카사」의 운명도 폭풍 속의 촛불이다.
강압정치 끝에 지난 10월15일 군부「쿠데타」로 쫓겨난 「엘살바도르」의 「로메로」도 이웃나라 「과테말라」로 도망, 잠적해버린 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초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었지만 미국정부가 온건 중도파인 현 군사정부를 지지하고 있어 그의 떠돌이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영국에 망명하면서 영국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와 박정희 대통령 빈소에 떳떳이 분향할 수 있었던 전 월남 대통령 「티우」는 그들에 비하면 훨씬 팔자가 좋은 편이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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