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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의 대형 유통기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출판문화는 거의 전적으로 출판인 자신들의 열의에만 의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 이후 4차례에 걸친 경제관계 계획이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산업의 진흥책 같은 것은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80년대로 넘어 가는 길목에서 우리의 정신문화 배양의 기반이라 할 출판산업에 대한 지속적 무관심이 이 이상 방치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 아래서 최근 사단법인 출판문화협회가 스스로 사활을 건 출판산업 육성을 위해 대형 출판유통회사 설립 안을 제시한 것은 세인의 주목을 끌기에 족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우리 나라 출판·서적상업계는 해방 후 3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기업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도서유통구조의 취약성과 경영의 합리화를 이루지 못한데 기인하는 것이지만, 그 근원을 이루고 있는 문제점들을 추출하면 출판산업 자신들의 이념부재, 자본과 경영 규모의 영세성 등이 불량도서의 범람과 일부 업자들에 의한 「덤핑」행위를 불가피하게 한 데 있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국 1천9백20개 출판사의 58.2%에 해당되는 1천1백18개 사가 연간 단 1종의 책도 발행하지 않는 간판 뿐의 출판사이며, 5종이하의 출판사까지 합치면 무려 80.9%로서 우리 나라 출판사가 얼마나 영세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점의 경우도 영세하기는 마찬가지다. 연간 판매액이 1천만 원 이상 5천만 원 미만인 도매서점이 41개점으로 전체의 49.4%를 차지하고 있고 1백만 원 이상 5백만 원 미만의 서점도 전체의 21.7%에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 나라 대부분의 도매서점은 그 연간 판매액이 5천만 원 미만이라는 구멍가게 같은 실정인 것이다. 소매서점은 이보다 더해 1백만 원 이상 5백만 원 미만의 소매서점이 1천2백61개점으로 전체의 46,7%를 차지한다. 이들 서점의 평균 종업원 수는 3.2인, 시설규모는 매장이 15.8평(51.1%), 창고가 13.3평(43.1%)으로 나타나 폭발적으론 늘어가고 있는 출판 량을 모두 진열·판매하기조차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편, 출판사와 서점간의 판매대금 결제방식이 대개 60∼90일의 어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서적판매업의 전근대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세한 규모로 시작한 출판사들은 늘 자금부족에 허덕여 새로운 기획출판은 엄두도 못내는 것이다.
이처럼 출판물의 유통체계는 한마디로 난맥상 그것이다. 출판된 서적이 판매되는 경로를 보면 출판협동조합, 총판 판매회사, 서점과의 직거래, 할부의 판도서, 지사, 동대문 「덤핑」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해적판, 불량도서의 출판·유통은 전체 지방서점의 서가가 대부분 이를 책을 채워진다는 점에서 출판부조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유통업계의 무질서는 서점「마진」30%의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결국은 과당경쟁의 유발, 서적 업의 영세화, 출판물의 부실화를 촉진하는 원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출판인들이 마련한 대형유통기구 설립의 「마스터·플랜」은 결국 이 같은 문제점들을 일거에 해소시킬 수 있는 묘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만한 제안이라 하겠다.
정부로서도 산업생산 장려에만 치중했던 지금까지의 금융 혜택을 출판문화 육성에도 돌려 출판유통기구설립을 위한 자금지원에도 깊은 배려가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한 정책자금으로서 재무부의 산업합리화 심의회 규정에 따른 「산업합리화 자금」이나 상공부의 유통근대화 종합시책에 따른 「유통근대화 자금」의 융자를 문공부가 적극 주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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