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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차례의 남북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70년대는 분단국가의 아픔을 실증하듯「스포츠」의남북대결로 점철되었다.
63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렸고 동경「올림픽」배구예선으로 분단후 처음으로대면했던 남북한「스포츠」는 64년「인스브르크」동계「올림픽」때 재회했다가 다시 오랜 세월동안 상봉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71년 「나고야」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남북「스포츠」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매년 대치, 격양된 승부겨루기를 줄기차게 거듭했다.
지난8월 동경에서 개최된 79년도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에 이르기까지 70년대 남북의 대결은 대회별로 볼때 모두 17차례.
그러나 한국은 72년 「뮌헨·올림픽」을 제외하고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 74년 「테헤란」 「아시아」 경기대회, 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등 국제종합대회에서 거듭 북한에 우위를 나타냈고 종목별로는 탁구·배구·농구·「펜싱」·「레슬링」· 도등이 강세였으며 남북이 직접 격돌한 단체경기에서는 통산14전11승1무2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 북한이 당초 국제「스포츠」무대에서 느린 선전효과를 완전히 깨뜨려 놓았다.
북한은 사격·「복싱」·역도등 일부 개인종목에서만 열세를 면했을 따름이다.
남북대결의 「하이라이트」는 78년12윌20일 하오6시45분 「방콕」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 축구결승전.
분단후 32년만에 처음으로 실현된 대표「팀」끼리의 이 결전은 연장전을 포함한 1백20분간을 호각의접전으로 시중, 결국 0-0으로비 지만「텔리비전」으로 실황을 목격한 국민들은 아슬아슬한 장면에가슴을 죈 이상으로 분단민족의 아픔을 절감하는한편, 시상대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선 남북 공동우승」에 민족애를느끼기도 했다.
축구의 경우 이에앞서 78년10월26일 「방글라데시」 수도 「대카」에서 열린 제20회「아시아」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이 북한을 제압(승부차기6-5), 76년 「방콕」 제18회대회때의 분패(1-0)를 설욕했었고 여자배구는 「뮌헨·올림픽」에서 패했지만 이후 74년「테헤란」, 7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3-0으로 연승, 70년대 초까지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종합적으로 볼때 72년의「뮌헨·올림픽」에선 비록 북한이 사격의 금「메달」(이호춘)로 한걸음 앞섰으나 74년「테헤란」대회이래 1회의「올림픽」과 2회의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한국이 계속 우세를 견지했다. 이때문에 북한이 79년들어 갑자기 각종 국제대회 출전을 기피해버리는 치졸함을 드러내 70년대의 남북대결에서 한국의 압승을 스스로 확인하는 셈이 되었다. <박군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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