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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호준화의 재검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교육제도를 포함해서 무릇 모든 제도는 그 자체로서 완벽한 것이 될 수 없고, 저마다의 장·단점과 함께 특히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이 통례라 할 수 있다.
74년 실시이래 계속 논란의 초점이 되어온 이른바 고교추첨진학제도는 이러한 시각에서 이제 본격적인 재검토를 해야할 단계에 왔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당초 고교평준화시책은 소위 일류고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집착때문에 전국적으로 극성스런 과외공부 풍조를 자아냈고, 이로 인한 성장기 청소년들의 건강저해, 학부모들의 과중한 과외비출혈강요등 누적된 교육부조리를 완화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교육여건하에서 동등한 질의 교육을 보장한다는 이른바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이상론에 바탕해서 일정 수준에의 상향식 평준화를 이룩해보겠다는 야심적 기획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성찰해 보면 이같은 이상론이 실은 처음부터 실시불능한 환상적 기대를 전제로 한 탁상공론적 교육제도였음을 쉽사리 통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본래 학교마다의 자율성 보장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청이 될 수밖에 없는 교육의 특이한 성격으로 보거나 사립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에 대한 동일한 재정적후원을 충족시킬수 없는 국고재정형편에 비추어보거나 이른바 평준화시책은 처음부터 허구의 제도가 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당연한 귀결로 서울·부산·대구·광주·인천등 5대도시에서 시작하여 12개시로까지 확대했던 그동안의 고교평준화 시책은 해마다 심대한 부작용을 누적시켜 왔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책상의 난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한마디로 이념상의 관점에서는 물론, 교사의 질에서부터 학교의 시설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으로 도시평준화 될수 없는 학교교육을 당국이 무리하게 평준화시키겠다고 한데서 초래된 당연한 모순의 누적이었다할것이다. 각급교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저하, 사학을 위시한 모믄 학교의 자율성 위축, 학교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에 따르는 전학생 과외공부풍조등 심각한 부작용이 이제 좌시할수 없을만큼 두드러지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평준화지역일수록 과외열이 오히려 더 높아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고있다는 것은 본난이 누차 지적한바있거니와 어쨌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저하, 교사들의 자육적 교수의욕 위축등은 이제 우리나라 교육의 장래를 위해 도저히 그대로 방치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사람의 생애에 있어 고교입시를 준비하는 시기는 그 나름대로 자기선택의 시기이기 때문에 육체적·정신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지닌 지적 능력을 「테스트」 하고 그에 따른 정신적 시련을 극복하는 훈련을 쌓아야할 중요한 때이기도 한 것이다.
고교추첨진학제는 이처럼 중요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안이한 인생관을 넣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학력의 저하라는 지극히 우려해야할 현상을 자초했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볼때 평준화시책은 청소년들의 건강증진과 이른바 일류교의식을 중화시키는데는 공헌했을지 몰라도 교육의 정상화나 질적향상에는 역행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평준화시책에 따른 모든 강제수단을 동원하면서도 국고보조를 하지 못한데서 생긴 사학의 운영난이 아닐수 없다.
어차피 국가예산으로 모든 고교를 부지못할바에는 순전히 재정적 이유에서만도 사학의 진작을 통해 민간의 교육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평준화시책을 당장 중단하고 전반적인 경쟁입시제로의 환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학에 대해서만이라도 평준화정책을 철회하고 자율적인 운영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현정부가 과도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해서, 모는 조령모개식의 정책변경이라는 지탄을 꺼려서 지금 심각성의 도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교육제도의 모순을 방치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문교정책입안자들의 깊은 성찰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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