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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근 청문회서 본 채동욱식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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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인사청문위원=“혹시 혼외자식 있습니까.”

 ▶채동욱=“예, 그렇습니다.”

 ▶청문위원=“예??? 뭐라고요?”

 ▶채동욱=“부적절한 처신엔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아픈 개인사입니다.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음을 부디….”

 1년3개월 전 ‘채동욱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파도파도 미담’ 운운하지 말고 말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 대응을 대입하면 아래와 같았다.

 ▶청문위원=“혼외자식 기사가 났어요.”

 ▶채동욱=“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청문위원=“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채동욱=“검찰 흔들기입니다. 해당 언론을 고소하겠습니다!”

 ▶청문위원=“반응 세네…정말…아닙니까?”

 ▶채동욱=“(톤 다운하며)제가 최고의 가장은 아니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채 전 총장에 관한 개인 비밀자료 유출 과정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규명돼야 할 것이다. 어떻든 많은 사람이 혼외자가 정말 있는지 여부보다 서서히 바뀐 채 전 총장의 태도에 더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그의 답변이 진실했어도 가상 청문회를 통과했을 것이란 보장은 물론 없다. 하지만 사실을 용기 있게 밝히는 데 무덤에 침 뱉을 이 누구였을까.

 사안은 다르지만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대응에서 ‘채동욱’을 본다. 정 후보자는 1987년 강남구 일원동 기자아파트를 사서 실거주하지 않고 전매금지기간(3년)에 팔아 수천만원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3년을 살았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유인태 의원이 해당 아파트에 실거주한 A씨의 육성테이프를 청문회에서 틀었다.

 ▶정성근=“저것이 사실이라면,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데요….”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린가. 채 전 총장이 처음 남 얘기 하듯 한 것과 비슷하다.

 ▶정 후보자=“저분(A씨)이 왜 저렇게 답변하시는지 저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마치 A씨가 이상한 사람처럼 강하게 나왔다. 하지만 꼬리를 내렸다.

 ▶정 후보자=“너무 오래된 일이라…기억에 의존하다 보니까 제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해버렸습니다. 방송을 보고 아내가 전화해 왔습니다. ‘당신, 관행적으로 그렇게 했는데 왜 그걸 기억 못 하냐’….”

 거짓말에도 사이클이 있고, 색깔이 있다. 그냥 거짓말도 있고, ‘화이트 라이’(white lie·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정 후보자의 말대로 ‘결과적 거짓말’도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이건 거의 ‘구라’ 수준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있었던 일도 아니다. 30살 넘어서 구입한 아파트에서 3년을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기억이 흐릿할 수도 있나. 고위 공직 후보자의 청문회 거짓말. 부동산 전매보다 더 결격사유다.

 “솔직히 30년 전엔 나도 장관 될 줄 몰랐다. 남들 다 하는 전매란 걸 해봤는데 문제가 될 줄이야. 죄송하다.”

 이런 말을 좀 격식 있게 했다면 털고 갈 수도 있던 일이다.

 3000년도 더 전 중국 주(周)나라 초기의 대정치가 강태공(태공망·太公望)이 지었다는 육도(六韜)의 선장(選將·장수를 선발)편에 8징(徵·기준)이라고 있다. 인재를 살피는 여덟 가지 기준이다. ①상세함, 즉 디테일(問之以言, 以觀其詳) ②임기응변(窮之以辭, 以觀其變) ③성실(與之間諜, 以觀其誠) ④덕성(明白顯問, 以觀其德) ⑤청렴(使之以財, 以觀其廉) ⑥미인계 앞에서의 정절(試之以色, 以觀其貞) ⑦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용기(告之以難, 以觀其勇) ⑧술에 취한 뒤의 태도(醉之以酒, 以觀其態) 등이다.

  테스트하기 불가능한 ⑥항(정절)과 ⑧항(취중 태도)은 버리더라도 정 후보자는 이 사안 하나로 ②임기응변 ③성실 ④덕성 ⑤청렴 ⑦용기에 하자를 보였다. 그런 정 후보자의 거취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하고 있다. 과연 청문회에서 거짓말해도 된다는 전례를 남길 것인가. 박 대통령, 그를 구할 순 있다. 대신 청문회는 죽는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