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에 발목잡힌 퍼트 머신 박인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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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꼭 살리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14일(한국시간) 영국 사우스포트 로열 버크데일에서 끝난 LPGA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깝게 놓친 박인비(26·KB금융그룹)는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말했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강풍 속에 5타를 잃은 박인비는 최종 합계 1오버파 단독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박인비는 “초반에 짧은 퍼트를 놓치면서 자신감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날 박인비는 2번 홀과 4번 홀에서 각각 1.5m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면서 흔들렸다. 골프에서 퍼트는 멘탈이 지배하는 분야이며, 짧은 퍼트는 자신과 용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날 박인비의 스트로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평소 퍼트를 할 때마다 감을 믿고 곧바로 스트로크하는 박인비였지만 이날은 공 앞에서 멈칫하는 시간이 길었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퍼터를 바꿔 들고 나왔다. LPGA 투어 10승 중 9승을 함께 한 오딧세이(세이버투스) 대신 핑(크레이지) 퍼터를 들고 나와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라운드마다 3퍼트가 1~2개씩 나왔다. 박인비는 “반드시 넣어야 할 퍼트를 넣지 못하면서 생각대로 플레이가 안 풀렸다”고 말했다.

합계 1언더파로 우승한 모 마틴(32·미국)도 초반에는 보기만 2개를 하면서 고전했다. 그러나 링크스의 강풍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경기를 펼친 끝에 마지막 홀에서 극적인 역전을 일궈냈다. 박인비, 수잔 페테르센(33·노르웨이), 펑샨샨(25·중국)이 서로를 견제하다 무너지는 사이 마틴은 18번 홀(파5)에서 이글을 기록하며 단숨에 2타를 줄였다. 3라운드에서 4퍼트로 더블보기를 하는 등 5타를 잃으면서 추락했던 그였지만 마지막날, 마지막 홀에서 2m 이글 퍼트를 성공해 ‘메이저 여왕’이 됐다.

마틴은 LPGA 투어의 대표적인 단타자다.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34야드로 160명 가운데 156위에 불과하다.그러나 티샷 정확도는 86%나 된다. 전장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LPGA 투어에서 좀처럼 우승 기회를 잡지 못하다 이번 우승으로 '골프는 거리가 전부가 아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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