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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막장으로 치닫는 안철수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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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하 경칭 생략)을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했다. 사실상 당선 확정이나 다름없다. 드디어 “광주의 딸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문희상의 약속이 완성됐다. 하지만 또 하나 맞아떨어진 게 있다. 1년 넘게 권씨 관련 기사마다 어김없이 달리던 “정치하려나 보죠?” “선거 때 보겠군…” 등의 댓글도 현실이 됐다.

 과연 안철수가 권씨의 법원 판결문을 읽어봤는지 궁금하다. 권씨는 2012년 12월 12일 오후 2시59분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서울경찰청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4시간 전인 오전 11시 경찰청장이 이미 수서경찰서장에게 “범죄 소명이 부족하니 영장 신청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게 확인됐다. 검찰청에 가던 형사들도 돌아왔다. 권씨 역시 법정에서 당시엔 영장 청구요건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없는 깡통 하드디스크를 받았다는 권씨의 주장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막상 디스크를 열어보니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권씨는 서울청에 수차례 항의전화를 했다지만 통화내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108쪽의 판결문은 “권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쪽으로 판단한다.

 1심의 이범균 부장판사는 누구일까. 그는 서울시 탈북공무원 유우성의 ‘간첩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려 야당의 극찬을 받은 판사다. 2심의 김용빈 판사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댓글녀 주소를 빼낸 것에 무죄를 선고했고, 김근태·권노갑에도 각각 28년과 37년 만에 무죄를 내린 판사 아닌가.

 권씨의 공천과정도 미심쩍다. 공식 입장은 발표 하루 전에 접촉해 성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직서를 낸 지난달 20일 ‘노컷뉴스’는 새정치련 당직자를 인용해 ‘권씨의 사직은 의미심장하다…광산을 예비후보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보도했다. 30일엔 조선일보가 권씨와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씨 등을 전략공천 대상자로 지목했다. 새정치련은 손사래쳤지만 권씨와 접촉 중이란 스포일러성 기사가 봇물을 이뤘다. 이러니 시중에선 “오히려 폭로 과정에서 부당거래로 새정치련이 권씨에게 말 못할 약점이 잡혀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판친다.

 제대로 된 전략공천이라면 국민이 무릎을 쳐야 한다. 차라리 지역주의에 맞선 김부겸이나 오거돈을 광산을에 보냈으면 국민들이 이렇게 가슴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권씨 한 사람을 꽃가마에 태우려 광산을→동작을→수원의 어지러운 돌려막기와 486 운동권끼리 ‘패륜’ 공천까지 번졌다. 거꾸로 가장 큰 반사이익은 박근혜 대통령이 챙겼는지 모른다. 단박에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취약한 정통성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보수 쪽은 “두 차례 대선 일등공신인 ‘의인’ 김대업도 공천하라”며 새정치련을 몰아세운다.

 이번에 최대 피해자는 안철수다. ‘무릎팍도사’와 ‘힐링캠프’로 애써 쌓아올린 새정치가 증발돼 버렸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면 권씨는 무고·위증 혐의를 피하기 쉽지 않다. 설사 그의 폭로가 진정성이 있더라도 정치와 거리를 둘 때에야 아름답게 비칠 수 있다. 성급한 내려꽂기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깨졌고, 다른 16명의 경찰 증인과 사법부까지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시나브로 새정치의 유통기한이 다된 게 아닌지 의문이다. 안철수의 ‘확장성 있는 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김성식은 “꿈을 마음에 묻는다”며 떠났고, 최장집은 “내가 할 일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윤여준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며 등을 돌렸고, 금태섭마저 떠났다. 정치판에는 자체 발광하는 항성(恒星)만 살아남는다. 세월호·인사 참사의 반사이익만 챙기다간 언제 이용가치가 다해 버림받는 별똥별 신세가 될지 모른다. 안철수도 점점 친노·486 운동권·동교동계에 치여 고립되는 분위기다. 권은희는 “안철수를 보며 희망을 느꼈다”고 했지만 마치 충성맹세처럼 귀에 거슬린다. 안철수 드라마가 자꾸 막장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필자에게 벌써 난청과 난시가 찾아온 걸까….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