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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지구 공전 6시간 늦었다면 인류도 공룡의 운명 맞을 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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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25면

중생대와 신생대를 가르는 K/T 경계층. 이 얇은 지층엔 생명의 흔적이 없다. 그리고 그 위·아래 지층의 유공충 화석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찰나의 차이로 운명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영장이 한 달만 늦게 나왔어도 그 부대에 배치되지 않았을 텐데, 하루만 일이 늦게 끝났어도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텐데, 한 시간만 서둘렀어도 육지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지구 공전이 6시간만 늦었다면 지구는 거대한 무덤이 될 뻔했다.

<12> 무시무시한 소행성

국토가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엔 길이가 약 1200㎞에 달하는 기다란 아펜니노 산맥이 있다. 이 산맥 중간에 있는 작은 도시 구비오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로마 원형 경기장과 다양한 분수와 교회 등 고대 로마에서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는 눈부신 기념물을 보기 위해서다. 이렇게 아름다운 기념물들이 가능했던 것은 인근에 산허리와 협곡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분홍색 석회암 노출면(面)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노출면의 이름은 ‘스칼리아 로사(Scaglia rossa)’. 로사는 분홍색을 의미하고 스칼리아는 ‘비늘’이란 뜻이다. 이 암석은 쉽게 갈라지는 특성 때문에 로마시대 극장 같은 건축물을 짓는 데 이용됐다. 이 거대한 암석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두께가 400m에 달한다. 해양에서 형성된 이 암석엔 지구 역사 가운데 5000만 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의 지질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월터 앨버레즈(Walter Alvarez)는 스칼리아 로사의 여러 층(層)에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유공충(有孔蟲, 단세포 생물의 일종, 석회질 또는 규산질의 껍질을 갖고 있음) 화석을 발견했다. 그런데 석회암 사이에 끼어 있는 두께 1㎝의 얇은 진흙층(層)에선 아무런 화석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진흙층을 경계로 위·아래 지층에서 나오는 유공충의 크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이 진흙층은 구비오 인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 위·아래 지층의 유공충 분포도 한결같았다. 앨버레즈는 생각했다. 도대체 유공충의 모습이 이렇게 바뀐 이유가 뭘까? 두 지층 사이의 시간 간격은 얼마나 될까? 두께 400m의 암석층에 낀 두께 1㎝의 진흙층은 끔찍한 멸종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두께 1㎝ 진흙층에 담긴 멸종의 역사
월터 앨버레즈가 찾아낸 그 진흙층은 구비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 그 지층 아래는 중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백악기(K), 그 위는 신생대의 첫 시기인 제3기(T)란 사실이 밝혀졌다. 아무런 화석이 나오지 않은 그 지층은 중생대와 신생대를 가르는 지층인 셈이다. 지질학에선 이 지층을 K/T 경계층이라고 부른다.

앨버레즈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정유회사 탐사팀의 일원으로 리비아에 근무하다가 카다피 정권이 모든 미국인을 추방할 때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로 돌아왔다. 버클리엔 그의 아버지인 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가 있었다. 아버지는 최초 두 번의 원자폭탄 폭발을 목격한 몇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뉴멕시코 사막에서 이뤄진 최초의 원자폭탄 폭발 실험에 입회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때도 그곳에서 폭발을 관찰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루이스 앨버레즈는 물리학연구소로 돌아가 방사선의 궤적을 관측하는 실험 장치를 개발했고 이 공로로 196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K/T 경계면 암석을 건네며 그 지층엔 아무런 화석이 없으며, 이 지층이 형성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전했다. 60대 후반의 아버지 물리학자는 아들 지질학자의 미스터리에 빠져들었다. 루이스는 지구 지각보다 유성(流星)에 1만 배나 많이 함유된 이리듐이란 원소를 떠올렸다. 암석 샘플에 들어 있는 우주 먼지(이리듐)의 양을 측정한다면 그 층이 형성되는 데 걸린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9개월에 걸친 실험 결과 K/T 경계면엔 다른 지층보다 30배나 많은 이리듐이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지역의 K/T 경계면에서도 같은 결과가 얻어졌다. 얇은 경계면은 생물의 공동묘지였으며 한결같이 이리듐이 지나치게 많았다.

6500만 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 해안에 직경 6~14㎞의 소행성이 충돌했다. 그 여파로 1억6000만 년 동안이나 육상세계를 지배했던 공룡은 다른 중생대 생물과 함께 멸종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많은 이리듐이 어디에서 왔을까? 앨버레즈 부자는 이리듐의 출처를 따져봤다. 처음엔 초신성(超新星supernova)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가설이 맞는다면 이리듐뿐만 아니라 다른 원소들도 많아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태양이 기체 덩어리를 통과했다거나 목성에서 이리듐이 왔다는 가설도 제기됐지만 둘 다 합리적이지 않았다.

이 무렵 같은 미국 버클리대학의 천문학자 크리스 매키는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자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서 공룡 같은 중생대 생물을 휩쓸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일이 크다고 해도 미국의 몬태나 주와 아시아의 몽골에 있는 공룡을 모조리 죽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소행성 충돌 후 암흑시대 거쳐 생물 멸종
이때 아버지 물리학자의 뇌리에 19세기 말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섬의 화산폭발이 떠올랐다. 1883년 8월 26일 진동과 함께 불을 내뿜기 시작한 크라카토아 화산은 다음 날 네 번의 대폭발과 함께 섬의 절반을 날려 보냈다. 폭발과 함께 지진 해일이 일어나 항해하던 배 6500척이 침몰했고 자바와 수마트라의 165개 마을이 폐허가 됐다. 3만6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버섯 모양 구름이 하늘로 솟았고 화산재와 분출물이 에베레스트 산 높이의 10배에 이르는 지상 80㎞까지 치솟아 태양과 지구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때부터 전(全) 지구적으로 저온(低溫)현상이 3년이나 지속됐다.

원자폭탄 실험을 통해 방사능 물질이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섞인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아버지였다. 루이스는 버클리의 천문학자 주장대로 소행성의 충격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먼지가 몇 년씩 해를 가려서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리고 광합성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큰 소행성이 충돌해야 할까? 다행히 아버지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였다. 아버지는 진흙층과 운석 그리고 지구 표면의 이리듐 농도를 근거로 계산한 끝에 소행성은 직경이 6~14㎞, 무게는 3000억 t 정도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정도 크기이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100억 개의 충격을 지구에 가하고, 그 결과 직경 200㎞, 깊이 40㎞의 구멍이 생기게 될 것이다.

지질학자인 아들은 이를 근거로 멸망의 시나리오를 썼다. 소행성이 충돌하는 순간 암석입자들이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절반 높이까지 솟구쳤다. 열에 녹아내린 암석덩어리는 대기권 너머로 날아갔다. 이것들은 모두 지구로 다시 떨어졌다. 하늘에서 불덩어리 폭우가 내린 것이다. 대기권의 온도는 올라갔고 온 지구의 숲은 불탔다. 동시에 해일·지진·산사태가 육지를 헤집어 놓았다. 불덩어리가 다 내린 후엔 암흑천지가 몇 달간 계속됐다. 광합성이 불가능해지자 살아있던 소수의 초식동물이 죽고 육식동물도 죽었다. 모든 생물 속(屬) 절반과 모든 바다 생물 종(種) 90%가 멸종했다. 육지에선 몸무게가 25㎏이 넘는 동물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지구를 1억6000만 년이나 지배하던 공룡들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구는 또 다시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멕시코 유카탄에 거대한 충돌 흔적
지질학자 아들과 물리학자 아버지는 동료들과 함께 1980년 6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지질학자들은 앨버레즈 부자의 급진적 대재앙 가설을 비웃었다. 앨버레즈 부자의 시나리오 이전까지만 해도 기후와 먹이사슬이 점진적으로 변하는데 덩치만 크고 미련한 공룡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멸종했다는 가설이 대세였다. 그 어마어마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면 그 흔적이 어디엔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당시 지구에 직경 100㎞ 이상의 운석 구멍은 세 개밖에 없었는데 모두 시기가 맞지 않았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덮고 있는 바다에 떨어졌다면 찾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앨버레즈 부자의 시나리오를 신뢰했고 전 세계를 뒤졌다. 그 가운데 미국 애리조나대학의 대학원생 앨런 힐더브랜드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 해안에서 중력 이상이 둥근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곳에서 텍타이트(tektite유리질 돌)와 초소형 석영 알갱이를 발견했다. 텍타이트는 엄청난 온도와 압력의 증거, 초소형 석영 알갱이는 ‘충격’의 증거다.

1991년 힐더브랜드는 지도교수와 함께 유카탄 반도의 치크줄룹이란 마을 아래에서 직경 180㎞의 운석구멍을 찾았다. 이것은 앨버레즈 부자가 계산한 크기와 일치했으며 시기도 맞았다. K/T 경계층의 근원을 찾아낸 것이다.

아들인 월터 앨버레즈가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K/T 경계층을 이룬 두께 1㎝의 지층이 얼마나 지속됐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얇은 층은 약 60년에 걸쳐서 퇴적된 것으로 밝혀졌다. 불과 60년 동안 일어난 멸종 사건에서 미생물 개체 수가 회복되는 데는 대략 1만 년이 걸렸다.

1989년 3월 23일, 직경 305m 가량의 소행성이 약 64만 ㎞ 차이로 비껴간 적이 있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38만 ㎞인 것을 감안하면 꽤 먼 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6시간 전만 해도 지구는 소행성이 지나간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지구 공전이 약간만 늦었어도 중생대 멸종을 일으킨 소행성은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을 테니 아직도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신생대가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은 공룡의 운명을 따라야 했을 것이다. 오늘 저녁 “휴, 다행이다”하면서 맥주 한 잔 할 만하지 않은가?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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